샤를 들레클뤼즈
Charles Delescluze1830·1848년 혁명을 거쳐 코뮌의 전쟁 대표가 되고 바리케이드에서 죽음을 택한 자코뱅 언론인
1871년 파리 코뮌의 전쟁 대표 들레클뤼즈는 피의 주간 마지막 날인 5월 25일, 무장하지 않은 채 샤토도 광장의 바리케이드로 걸어가 전투 중 총에 맞아 숨졌다.
드뢰 출신으로 1830년 7월 혁명에 가담했고, 1848년 2월 혁명 뒤 공화파 신문을 내며 활동하다 망명했다. 제2제정기에 체포되어 기아나 유형지 카옌에서 복역했고, 1868년 신문 『르 레베유』를 창간했다. 1871년 2월 국민의회 의원으로 뽑혔으나 코뮌에 참여하려고 사퇴했다. 자코뱅계 「독립 혁명가」로 공안위원이 되었고 5월 11일 민간인으로서 전쟁 대표를 맡았다. 5월 25일 패배가 분명해지자 샤토도 광장의 바리케이드 위로 걸어 올라가 총에 맞아 숨졌다.
상세 이력 보기
- 18307월 혁명에 참여했다.
- 18482월 혁명 뒤 공화파 언론인으로 활동했고, 이후 망명했다.
- 1868신문 『르 레베유』를 창간했다.
- 1871국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된 뒤 사퇴하고 파리 코뮌에 합류해 공안위원과 전쟁 대표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