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율리예비치 비테
Сергей Юльевич Витте차르가 미워한 구원투수
1888년, 측근들 앞에서 "화물 기관차 두 대로 황실 열차를 끌면 위험하다"고 직언했다. 며칠 후 보르키 탈선 사고. 알렉산드르 3세는 그를 국철 책임자로 발탁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금본위제를 주도한 제국 근대화의 설계자. 1905년 일본과 강화를 맺고 10월 선언을 받아냈으나, 차르는 위기를 넘겨준 그를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 한직에서 회고록을 쓰다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2–1903재무장관, 금본위제, 시베리아 횡단철도, 공업화 드라이브
- 1905.9포츠머스에서 일본과의 강화 협상 타결
- 1905.10초대 총리, 10월 선언 기초
- 1906.4해임, 이후 국가평의회 한직
등장 장면
10월 선언 — 양보를 받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