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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행정 · 러시아 백색운동 인물 2명

표트르 바실리예비치 볼로고츠키

Пётр Васильевич Вологодский
정부·행정 러시아 백색운동 러시아인 러시아인 1863–1925 ○ 자연사

타협으로 백색 시베리아를 묶은 변호사 정치가

콜차크에게 그는 군 지휘관의 자의와 정부의 무능으로 권위가 시간마다 떨어진다고 직언했다.

표트르 볼로고츠키는 시베리아 지역주의와 사회혁명당 운동에서 출발한 변호사이자 정치가로, 제정 말기부터 지방자치와 법률 개혁을 주장했다. 1918년 그는 시베리아의 반볼셰비키 정부를 이끌고 우파와 사회주의자, 지역주의자 사이의 타협을 관리했다. 콜차크의 집권 뒤에도 정부 수반으로 남았지만 군사 독재와 행정의 무능이 낳은 위기를 비판했고, 1919년 사임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7–1897시베리아 사법기관 서기관·판사·검사보
  • 1897–1917톰스크 변호사, 도시 두마 의원
  • 1902–1907톰스크 사회혁명당 조직과 시베리아 지역주의 운동 지도자
  • 1917톰스크 губер니야 комиссар, 옴스크 사법원장
  • 1918.01–06자치 시베리아 임시정부 외무장관
  • 1918.06–11시베리아 임시정부 의장
  • 1918.11–1919.11러시아 정부 각료회의 의장
  • 1920–1925중국 망명, 법률·교민 업무

빅토르 니콜라예비치 페펠랴예프

Виктор Николаевич Пепеляев

콜차크 독재를 설계하고 마지막까지 함께 선 카데트 정치인

1919년 9월 22일,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녹스 장군이 내게 왔다. 처칠은 오직 최고 통치자만 지원하라고 훈령했다.」 붕괴 직전의 정권 내막을 기록한 총리의 목소리다.

제정 러시아의 카데트당 소속 두마 의원으로, 1918년 11월 옴스크에서 군사 쿠데타를 조직해 알렉산드르 콜차크를 '최고 통치자'로 추대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콜차크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거쳐 1919년 11월 각료회의 의장(총리)에 임명되어 붕괴 직전의 백색 정부를 이끌었고, 정권의 유일한 충성파 정치인으로서 최후까지 콜차크 곁에 남았다. 1920년 1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의해 콜차크와 함께 이르쿠츠크 정치중앙에 넘겨졌고, 2월 7일 새벽 레닌의 직접 지시에 따라 재판 없이 총살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2카데트당 소속 제4대 국가두마 의원 (톰스크현)
  • 1914–1917제3 시베리아 위생·급식대 대장 (제1차 세계대전)
  • 1917.02–05임시정부 크론시타트 항구 사령관 겸 정부위원
  • 1918.08–11시베리아에서 군사독재 수립 운동 주도, 옴스크 쿠데타 조직
  • 1918.12–1919.05콜차크 정부 경찰국장 → 내무차관
  • 1919.05–11콜차크 정부 내무장관
  • 1919.11–1920.01각료회의 의장 (총리)
  • 1920.01–02체코군단에 넘겨져 콜차크와 함께 이르쿠츠크 수감,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