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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공산주의자 인물 5명

조건 모두 해제

예브게니 알렉세예비치 프레오브라젠스키

Евгений Алексеевич Преображенский
학술·연구 소속 미확정 소련 러시아 1886–1937 ✕ 처형

신경제정책 논쟁의 이론가

빅토르 세르주의 회고: "회의 중에 언제든 쓰러져 잠들 것 같았지만, 두뇌는 여전히 맑고 통계치로 가득 차 있었다."

볼셰비키 경제 이론가이자 부하린과 함께 『공산주의 ABC』(1919)를 집필한 선전가로, 당 중앙위원회 서기를 지내며 초기 소비에트 국가 건설에 참여했다. 1923년 '46인 선언'의 발기인이자 좌익 반대파의 핵심 논객으로서, 『새로운 경제학』(1926)에서 농민 부문의 잉여를 공업화 자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원시축적'론을 정식화해 신경제정책 논쟁을 이끌었다. 1929년 스탈린 노선으로 복귀했으나 곧 집단화 폭력에 반대하며 다시 지하 조직을 결성했고, 1937년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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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7–1920당 중앙 지도부와 경제 이론 활동
  • 1923–1927좌익 반대파·46인 선언
  • 1928–1937유배, 재체포와 처형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스미르노프

Владимир Михайлович Смирнов
경제·재정·계획 소련 소련 러시아 1887–1937 ✕ 처형

모스크바 봉기 포병 지휘관에서 좌파 공산주의자·민주중앙집권파로

러시아 단독 사회주의는 '유럽 사회주의라는 간선도로에서 갈라져 나온 곁길이며 실패할 운명'이라고 보았다.

1907년 볼셰비키에 입당한 모스크바 법대생으로, 니콜라이 부하린·오신스키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트리오를 이루었다. 1917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중포병을 지휘했고 1918년 초 RSFSR 상업·공업 인민위원을 지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반대한 좌파 공산주의자로 물러난 뒤, 민주중앙집권파·46인 선언·통합 야당을 거치며 당내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1921~1927년 고스플란 상임위원, 최고경제회의 금융위원회 의장, 노동국방회의 이사로 중앙계획 기구에서 활동했다. 러시아 단독 사회주의를 '유럽 사회주의의 곁길'로 보았고, 제명 후에는 '혁명과 볼셰비즘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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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볼셰비키 입당
  • 1909–1914모스크바 대학 법학부, 모스크바위원회 선동가
  • 1914–1917러시아 제국군 포병 준위, 서부전선
  • 1917모스크바 볼셰비키 신문 《소치알-데모크라트》 편집, 10월 봉기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중포병 지휘
  • 1918.02–1918.04RSFSR 상업·공업 인민위원
  • 1918–1921좌파 공산주의자, '군사야당' 지도자, 최고경제회의(VSNKh) 근무
  • 1920–1923민주중앙집권파('데치스트') 지도자
  • 1921–1927고스플란 상임위원, 노동국방회의 이사, 최고경제회의 금융위원회 의장, 중앙통계국 이사
  • 192346인 선언 서명
  • 1924–1926《프라우다》 및 《에코노미체스카야 지즌》 편집위원 겸직
  • 1926–1927사프로노프와 '15인 그룹' 결성, 통합 야당 참여
  • 1927.12제15차 당대회에서 제명, 우랄 유형 3년형
  • 1930–1937수감·유형 반복, 수즈달 정치격리소 수감 중 모스크바로 이송
  • 1937.05.26군사최고재판소에서 사형 선고, 당일 총살

티모페이 블라디미로비치 사프로노프

Тимофей Владимирович Сапронов

당내 민주주의를 요구한 '민주중앙집권파' 지도자

「이런 경제를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노동계급 앞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공산주의 사상을 실추시키는 일이다」. 「소부르주아 독재의 아고니」, 1931년 12월 집필, 1932년 발표

툴라주 모스타우시카 마을의 러시아 빈농 가정에서 태어나 15세부터 도장공으로 일했고, 1905년 혁명 운동에 들어가 1912년 볼셰비키가 되었다. 10월 혁명 후 모스크바 주 집행위원회 의장, 하리코프 주 혁명위원회 의장, 최고경제회의 부의장,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서기, 소인민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 1920년대 초 '민주중앙집권파'를 이끌며 당내 민주화를 요구했으나 1927년 제15차 당 대회에서 제명되어 유배되었고, 이후 좌익 반대파의 주요 이론가로 활동했다. 1931년 12월 「소부르주아 독재의 아고니」를 써서 소련 체제를 '기형적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했으며, 1937년 9월 28일 모스크바에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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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1916모스크바에서 도장공 노동자 조직, 건설노조 결성
  • 1917–1919모스크바 주 집행위원회 의장
  • 1920하리코프 주 혁명위원회 및 집행위원회 의장
  • 1920–1921'민주중앙집권파' 지도자, 당내 민주화 투쟁
  • 1921–1923최고경제회의(VSNKh) 부의장,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VTsIK) 서기
  • 1923–1925소(小)인민위원회 의장, 전러시아 중앙노동조합평의회 의장
  • 1926–192715인파 성명 주도, '국가자본주의' 테제 제출
  • 1927–1937당 제명, 유배, 「소부르주아 독재의 아고니」 집필, 체포 및 총살

가브릴 일리치 먀스니코프

Гавриил Ильич Мясников

레닌에게 언론자유를 요구하며 '먀스니코프주의'를 촉발한 노동자 볼셰비키

'열일곱인가. 많군.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다. 혁명은 무도회가 아니다.' — 미하일 로마노프 처형을 계획하며 쓴 회고록에서, 1918.

모토빌리하 금속노동자 출신의 러시아 혁명가. 1905년 볼셰비키에 합류, 1918년 페름 체카 부의장으로 미하일 대공 처형을 조직했다. 내전 후 당내 검열을 정면 비판하며 '군주제파에서 무정부주의자까지' 언론자유를 요구했고, 레닌의 직접 반박을 불러일으켜 '먀스니코프주의'로 불렸다. 1922년 제명 후 '노동자 그룹'을 결성, 프랑스 망명 중 『최근의 사기』에서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분석했다. 1944년 귀국 후 체포돼 이듬해 총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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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1906모토빌리하 병기공장 금속노동자, 사회혁명당 입당 후 RSDLP(볼셰비키)로 전향, 무장투쟁반 활동
  • 1906–1917반복적 체포·탈옥·유형, 오룔 중앙감옥 복역 후 2월혁명으로 석방
  • 1917–1918모토빌리하 소비에트 의장,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VTsIK) 위원, 페름 체카 부의장
  • 1918–1920미하일 대공 처형 조직, 제16사단 정치위원, 페름 현당위원장
  • 1921–1923'노동자 그룹' 결성, 언론자유 요구로 레닌과의 공개 논쟁 — '먀스니코프주의' 논쟁, RCP(b) 제명·체포
  • 1928–1944이란·터키 경유 프랑스 망명, 『최근의 사기(Ocherednoy Obman)』 집필 — 소련 국가자본주의론 전개
  • 1944–1945소련 대사관 초청으로 귀국, 직후 체포되어 1945년 11월 16일 총살 (2001년 12월 25일 복권)

게오르기 레오니도비치 퍄타코프

Георгий Леонидович Пятаков
정치·당 지도 소련 소련 우크라이나 1890–1937 ✕ 처형

혁명과 산업 계획 사이의 볼셰비키

1937년 1월, 제2차 모스크바 재판의 피고석에서. 독일 작가 리온 포이히트방어는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중간 키에 중년, 약간 벗겨진 머리와 붉은빛이 도는 옛날식의 떨리는 뾰족 수염을 한 퍄타코프가 마이크 앞에 서서, 자기가 맡은 산업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조용하고도 공들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마치 대학 강사처럼 손가락을 뻗어 설명하며, 오래전에 죽은 '퍄타코프'라는 인물의 삶과 행적을 상세히 밝히려는 역사학자처럼, 청중이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납득하기를 바라는 한 가지 소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초대 수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과 민족자결권 문제에서 좌파 공산주의자로서 레닌과 맞섰고, 레닌이 '유언'에서 언급한 단 여섯 명의 볼셰비키 중 한 명이다. 좌익 반대파로 출당되었다가 복당 후 중공업 부인민위원으로 5개년 계획을 주도했으며, 1937년 제2차 모스크바 재판의 주피고인으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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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0–1917볼셰비키 입당, 키예프 지하활동, 유형과 망명
  • 1917–1918키예프 위원장, 국립은행 인수, 좌파 공산주의자
  • 1918–1920CP(b)U 중앙위 서기, 우크라이나 임시정부 수반, 군사정보국장
  • 1920–1927돈바스·고스플란·최고경제회의 부의장, 좌익 반대파
  • 1928–1930복당, 고스방크 총재, 신용개혁
  • 1930–1936중공업 부인민위원·제1부인민위원, 5개년 계획
  • 1936–1937체포, 제2차 모스크바 재판 주피고인, 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