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가브릴로비치 실랴프니코프
Александр Гаврилович Шляпников노동자 반대파의 지도자. 레닌에게 패배하고 숙청되다
1937년 9월 2일 군사합의회의 비공개 재판에서 테러 음모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고 다른 사람도 끌어들이지 않았다. 제10차 당대회 강령이 옳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다른 야권과 달리 과거가 아니라 철저한 노동자 민주주의를 요구했다고 진술했다.
무롬의 가난한 옛의식파 집안에서 태어난 숙련 선반공이었다. 1901년 RSDLP에 입당해 1903년 분열 뒤 볼셰비키로 섰고, 프랑스·독일·영국 공장을 전전하며 유럽 노동운동을 체득했다. 1917년 2월 혁명 때 수도에 있던 최고위 볼셰비키로서 당 중앙위원회 러시아국과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에서 활동했다. 10월혁명 후 초대 노동인민위원으로 8시간 노동제의 기초를 놓았고, 내전 말기 콜론타이와 함께 '노동자 반대파'를 이끌며 노동조합의 경제 통제를 주장했으나 1921년 제10차 당대회에서 패배했다. 외교직으로 밀려난 뒤 1933년 출당, 1935년 징역형을 거쳐 1937년 9월 2일 거짓 기소로 처형되었다. 1963년 사법적 복권, 1988년 당적 복권.
상세 이력 보기
- 1901RSDLP 입당, 1903년 분열 뒤 볼셰비키로
- 1917당 중앙위원회 러시아국 위원
- 1917–18초대 노동인민위원 (RSFSR)
- 1918–19남부전선·카스피-캅카스전선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 1920–22'노동자 반대파' 지도, 중앙위원
- 1923'46인 선언' 서명
- 1924–25주프랑스 통상대표
- 1933당 제명, 행정적 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