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활동과 국가·세력

인물이 수행한 활동과 그 활동에서의 소속을 함께 찾습니다.

농업·토지정책 · 헝가리 인물 2명

조건 모두 해제

코바치 벨러

Kovács Béla
농업·토지정책 헝가리 헝가리 헝가리 1908–1959 ○ 자연사

소련군에 끌려가 소농당 해체의 방아쇠가 된 사무총장

체포되며 남긴 말: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고, 그 죄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평생의 일을 배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농 출신의 농민 정치가로, 소학교 네 학년만 마친 뒤 1933년 소농당에 입당해 1945년 사무총장으로 전후 최대 정당을 이끌었다. 틸디·너지 정부의 농업장관으로 지주제 해체와 토지개혁을 밀었고, 공산당의 살라미 전술에 맞서 당의 독립을 지켰다. 1947년 2월 국회가 면책특권 박탈을 거부하자 소련군이 조작된 간첩 혐의로 그를 체포해 굴라크로 끌고 갔고, 이 납치는 너지 페렌츠 총리의 사임과 소농당 해체의 방아쇠가 되었다. 1955년 귀환해 1956년 너지 임레 혁명정부의 농업장관으로 복귀했고, 진압 뒤 카다르 체제에 협력하다 1959년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3–44소농당 입당, 버러녀 조직가·반나치 저항
  • 1944–45내무부 정치 차관(데브레첸 임시정부)
  • 1945–46농업장관
  • 1945.08–47소농당 사무총장
  • 1947–55소련군 체포, 굴라크 20년형, 1953년 모스크바 수감
  • 1955–56헝가리 이송, 1956.4 석방
  • 1956.10–11너지 임레 혁명정부 농업장관·국가장관
  • 1957–59카다르 체제 협력, 1958 국회의원

도나트 페렌츠

Donáth Ferenc
농업·토지정책 헝가리 헝가리 헝가리인 1913–1986 ○ 사후 복권, 1989년

혁명과 개혁을 잇고 독재의 상처를 짊어진 정치가

1956년 11월 4일, 너지 임레와 함께 소련의 공격을 규탄하는 성명을 작성한 뒤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도나트 페렌츠는 헝가리 공산주의 운동과 농업정책에 참여한 정치가이자 농업경제 연구자였다. 전후 토지개혁과 집단화 추진에 관여했지만, 1951년 숙청 재판으로 투옥된 뒤 복권되어 당 노선과 국가 폭력의 긴장을 직접 겪었다. 1956년 너지 임레를 지지하며 혁명을 해석하고 소련의 군사 개입을 비판한 그는 너지 임레 재판에서 1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60년 석방되었다. 이후 농업경제를 연구하고 1980년대 민주 야당의 대화를 조직했으며, 1989년 법적으로 복권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4헝가리 공산당 입당, 지하 활동
  • 1937–19393월 전선 조직 참여, 국민농민당 창립 참여
  • 1945–1948국가토지정착위원회 부위원장, 농업부 정치차관
  • 1948–1951헝가리 노동인민당 중앙위원회 사무국·농촌부문 지도
  • 1951–1954숙청 재판으로 15년형, 1954년 복권·석방
  • 1956너지 임레 주변 개혁파,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 임시집행위원
  • 1958–1960너지 임레 재판에서 12년형, 1960년 특별사면 석방
  • 1976–1985협동조합 연구자, 민주 야당 연대와 모노르 회의 조직
  • 1989너지 임레 재판 판결 무효화로 사후 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