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7월 25일, 그는 무솔리니를 해임하고 체포하게 한 뒤 바돌리오를 새 정부 수반으로 임명했다.
이탈리아 국왕으로서 자유주의 헌정의 쇠퇴, 파시스트 국가의 성립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는 무솔리니의 권력 장악과 식민 전쟁, 인종법, 참전을 승인해 왕정의 책임을 키웠지만, 1943년 7월 무솔리니를 해임하고 피에트로 바돌리오를 임명해 체제 전환의 헌정 통로를 열었다. 그러나 9월 휴전 뒤 로마를 떠난 그의 선택은 군과 국가를 혼란에 빠뜨렸고, 전후 왕정의 정당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1946년 퇴위했다.
1943년 6월 그는 국왕에게 무솔리니를 해임하고 바돌리오를 임명하며 독일과의 동맹을 끊으라고 비밀리에 요구했다.
이반오에 보노미는 사회주의 개혁파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자유주의 의회정치의 핵심 인물로 이동한 정치가였다. 파시즘의 부상기에 충분히 단호하게 저항하지 못했고 무솔리니 정부를 지지한 전력이 있었지만, 1942년부터 반파시스트 세력을 다시 연결하며 정권 교체를 모색했다. 그는 1943년 국왕에게 무솔리니 해임과 피에트로 바돌리오 기용을 비밀리에 요구했고, 9월에는 6개 정당으로 구성된 민족해방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이후 왕정과 저항운동, 연합국 사이의 타협을 이끌며 전후 이탈리아의 제도적 이행을 관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