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오를란도
Vittorio Emanuele Orlando카포레토 뒤 총리로 승전을 이끌었으나 강화회의에서 영토 요구를 이루지 못한 정치가
팔레르모에서 태어나 이름난 법학 교수가 되었고, 1897년부터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자유주의자였다. 1917년 10월 카포레토 패전으로 정부가 무너지자 총리가 되어 카도르나를 해임하고 군을 재정비했으며, 1918년 비토리오 베네토 승리로 「승리의 총리」라 불렸다. 강화회의에서 런던 조약이 약속한 달마티아와 피우메를 요구했으나 얻지 못해 1919년 4월 회의를 떠났고 6월 사임했다. 「불구의 승리」는 무솔리니가 일어선 배경이 되었다. 처음엔 무솔리니를 지지했으나 1924년 마테오티 살해 뒤 결별했다. 1952년 로마에서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7–1925하원의원(파르티니코)
- 1907–1909법무장관
- 1916내무장관
- 1917–1919이탈리아 총리
- 1919파리 강화회의 「4거두」
- 1946제헌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