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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행정 · 일본 국가기관 인물 4명

스즈키 간타로

鈴木貫太郎
정부·행정 일본 국가기관 일본 일본 1868–1948 ○ 자연사

항복 결정을 조율한 해군 출신 총리

1945년 8월 10일, 그는 교착한 회의에서 “이제 제가 어전에 나아가 성의를 여쭙고, 그 뜻으로 회의의 결정을 삼고자 합니다”라고 제안했다.

스즈키 간타로는 일본 해군 대장 출신 정치가로, 천황의 시종장과 추밀원 의장을 거쳐 전쟁 말기의 총리가 되었다. 그는 공개적으로는 군부의 전쟁 수행 노선을 받들었지만, 1945년 내각과 최고전쟁지도회의의 대립을 관리하며 전쟁을 끝낼 통로를 열었다. 원폭 투하와 소련의 대일 참전 뒤에도 이른바 ‘Big Six’의 교착은 계속되었고, 스즈키는 천황 주재 회의에서 결정을 천황의 재가에 맡기는 절차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일본 정부는 포츠담 선언 수락을 결정했지만, 그 과정은 침략전쟁의 책임과 군부의 저항을 지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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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4–1887해군병학교 입교 및 졸업
  • 1904–1905제4구축대 사령, 일본해 해전 참전
  • 1914–1917해군차관
  • 1924–1925연합함대 사령장관, 해군군령부장
  • 1929–1936천황 시종장 겸 추밀고문관
  • 1944–1945추밀원 의장
  • 1945-04–1945-08일본 내각총리대신, 항복 결정 주도
  • 1945-12–1946-06추밀원 의장, 공직 추방으로 사임

도조 히데키

東條英機
군사·지휘 일본 국가기관 일본 일본인 1884–1948 ✕ 처형

북방 구상과 남방 팽창 사이에서 제국을 전쟁으로 이끈 군인 정치가

1941년 10월, 그는 철군 요구를 ‘심장’이라 부르며 양보를 항복으로 규정했다.

도조 히데키는 일본 제국 육군의 통제파를 대표한 군인 정치가로, 만주와 중국에서 제국의 군사적 팽창을 밀어붙였다. 관동군 참모장 시기에는 소련과의 국경 긴장을 이용하면서도 중국 북부로 전선을 넓혔고, 이후 육군 지도부의 우선순위는 대소 북진보다 석유와 전략 자원을 겨냥한 남진으로 기울었다. 총리로서 그는 국가를 총동원해 미국·영국과의 전쟁을 수행하고 반대 의견을 억눌렀으며, 1944년 전황 악화 속에서 실각했다.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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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육군사관학교 졸업, 보병 소위 임관
  • 1919–1922스위스·독일 주재 무관 및 유럽 근무
  • 1935–1937관동군 헌병대 사령관, 관동군 참모장
  • 1938육군차관, 육군 항공총감
  • 1940–1941제2·3차 고노에 내각 육군대신
  • 1941–1944일본 제40대 총리, 내무대신·육군대신 겸임
  • 1944육군 참모총장 겸임, 7월 내각 총사퇴
  • 1948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 처형

고노에 후미마로

近衞文麿
정부·행정 일본 국가기관 일본 일본 1891–1945 ✕ 자살

외교를 말했지만 제국의 전쟁을 넓힌 귀족 정치가

1941년 10월, 그는 전쟁을 자신할 수 없다며 외교를 택할 사람에게 정권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고노에 후미마로는 일본의 귀족 정치가이자 제국의 전시 동원을 이끈 총리였다. 사회주의 사상과 반제국주의적 인종평등론에 관심을 보였지만, 서구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과 동아시아 지배 구상을 추진했다. 1940년 삼국동맹과 대정익찬회를 주도한 뒤 미국과의 협상을 시도했으나 군부의 확장 노선을 꺾지 못했고, 1941년 도조 히데키에게 정권을 넘겼다. 전후 전범 용의자로 체포될 예정이던 그는 1945년 청산가리로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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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귀족원 의원
  • 1919파리강화회의 일본 대표단 수행원
  • 1933–1937귀족원 의장
  • 1937–1939제1차 내각 총리대신
  • 1940–1941제2·3차 내각 총리대신
  • 1940–1941대정익찬회 총재
  • 1945동구궁 내각 국무대신

히로히토

裕仁
정부·행정 일본 국가기관 일본 일본 1901–1989 ○ 자연사

제국의 전쟁과 전후 전환을 통과한 천황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 1945년 항복 조서의 구절

히로히토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재위한 일본의 제124대 천황으로, 제국 헌법의 군주와 전후 헌법의 상징천황을 모두 경험했다. 그는 일본의 대외 침략과 태평양전쟁을 승인한 국가 체제의 정점에 있었으며, 전쟁 수행과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의 범위는 지금도 논쟁적이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소련의 대일 참전 뒤 교착된 최고전쟁지도회의에 개입해 포츠담 선언 수락을 결정하고 항복 방송을 했다. 전후에는 천황의 신격화를 부정하고 상징적 국가원수로 남았으며, 해양생물학 연구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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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도쿄에서 출생
  • 1916황태자로 책봉
  • 1921–1926섭정
  • 1926–1945일본 제124대 천황, 제국 헌법상 대권 행사
  • 1941대미·대영·대 네덜란드 개전 결정 승인
  • 1945포츠담 선언 수락을 결정하고 항복 방송
  • 1947–1989일본국 헌법상 상징천황
  • 1989도쿄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