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혁명평의회의 지도부
1991년 정권 붕괴 뒤, 그는 다른 하위예 장교들과 함께 모가디슈에서 체포되지도 추방되지도 않았다.
소말리아의 경찰 간부 출신 정치가로 1969년 쿠데타 이후 바레 정권에 참여했다. 1970년 내무장관이 되었고 1971년부터 최고혁명평의회 부의장 중 한 명을 맡았다. 군·경 출신 지도부가 국가 행정을 장악한 구조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상세 이력 보기
- 1945이탈리아 식민지 경찰에 입대
- 1950–1954모가디슈 경찰학교 교관·통역, 로마 장교학교 수료
- 1960아덴 압둘라 오스만 대통령의 부관
- 1970내무장관 (1974년까지)
- 1971최고혁명평의회 부의장
- 1976부통령, 혁명사회당 정치국 위원
- 1987부총리 겸 국가계획장관
- 1989국민의회 의장 (1991년까지)
오가덴 전쟁을 지휘한 바레 정권의 장성 출신 부통령
1986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바레를 대신해 수개월간 사실상의 국가원수 역할을 맡았다.
프룬제군사아카데미 출신 장성으로, 시아드 바레 정권의 핵심 인물이자 오가덴 전쟁의 최고 사령관이었다. 1970년부터 국방장관, 1971년부터 부통령을 맡았고, 평의회 해산 뒤 1976년 혁명사회당 창립대회에서 정치국원 겸 부서기장으로 선출되어 군부의 정당 장악을 상징했다. 1987년 쿠데타 이후 첫 총리가 되었으나, 이삭족 학살 지휘 책임으로 미국 법원에서 2100만 달러 배상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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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1956이탈리아 카사노디로마 보병학교에서 군사 훈련
- 1970국방장관 취임
- 1971부통령 겸 국군 총사령관
- 1976혁명사회당 정치국원·부서기장
- 1977–1978오가덴 전쟁에서 국군 지휘
- 1987–1990총리
- 1991미국으로 망명
소말리아 군정과 사회주의
씨족제를 발전을 가로막는 '질병'이라 선언하고 결혼식까지 국가 지도 센터에서 치르게 했다.
1969년 쿠데타 이후 소말리아 최고혁명평의회를 이끈 군인·정치가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국가 통제, 문해교육과 행정 개편을 추진했다. 씨족주의 극복을 선언했지만 개인 권력과 씨족 관계가 통치에 계속 작용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41식민 경찰대 입대
- 1960독립 무렵 육군 부사령관
- 1969쿠데타로 집권, 최고혁명평의회 의장·대통령
- 1974아프리카통일기구 의장
- 1976소말리아혁명사회당 창당
- 1977에티오피아에 맞서 오가덴 전쟁
- 1991반군에 축출되어 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