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덴 전쟁을 지휘한 바레 정권의 장성 출신 부통령
1986년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바레를 대신해 수개월간 사실상의 국가원수 역할을 맡았다.
프룬제군사아카데미 출신 장성으로, 시아드 바레 정권의 핵심 인물이자 오가덴 전쟁의 최고 사령관이었다. 1970년부터 국방장관, 1971년부터 부통령을 맡았고, 평의회 해산 뒤 1976년 혁명사회당 창립대회에서 정치국원 겸 부서기장으로 선출되어 군부의 정당 장악을 상징했다. 1987년 쿠데타 이후 첫 총리가 되었으나, 이삭족 학살 지휘 책임으로 미국 법원에서 2100만 달러 배상 판결을 받았다.
다른 이름: 모하마드 알리 사마타르
주요 활동과 소속
-
1970–1987
소말리아 국가기관국방장관·국군 총사령관대표
군사·지휘 -
1976–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954–1956이탈리아 카사노디로마 보병학교에서 군사 훈련
- 1970국방장관 취임
- 1971부통령 겸 국군 총사령관
- 1976혁명사회당 정치국원·부서기장
- 1977–1978오가덴 전쟁에서 국군 지휘
- 1987–1990총리
- 1991미국으로 망명
관련 역사 사건
1988년 하르게이사 공격과 미국 민사소송
1988년 5월과 6월, 소말리아 정부군은 북서부 이삭족 거주 지역의 중심도시 하르게이사를 공습과 지상 공격으로 짓밟았다. 당시 국방장관 겸 제1부통령이던 사마타르는 이 공격을 직접 감독하고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동원된 부대를 지휘한 책임자로 지목되었다. 미국 국무부는 1989년 보고서에서 이 공격으로 민간인 5천 명이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삭족 학살로 알려진 이 사건에서 소말리아 북서부 지역에서는 대규모 살상과 납치, 조직적 강간, 임의 구금, 고문이 자행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바레 정권이 1991년 축출된 뒤 사마타르는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2000년대 초 미국에 거주하던 이삭족 피해자들이 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2004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의 자택에서 소장을 송달받았다. 그는 외국주권면제법을 근거로 면책을 주장했으나 2010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법이 외국 공직자의 면책 주장을 다루지 않는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해 소송이 계속되도록 했다. 2011년 연방지방법원은 강행규범 위반에 대해서는 외국 공직자 면책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그의 각하 신청을 기각했고, 2012년 8월 연방법원은 그에게 2천1백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15년 연방대법원은 그에 대한 민사소송을 유지하고 그의 상고를 기각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이 소송을 소말리아민족운동(SNM) 연계 인사들이 제기한 정치적 보복이라 주장했고, 재판 과정에서 원고들은 사마타르가 직접 잔학행위를 저질렀다거나 직접 관여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원고 측은 자신의 지휘 아래 있던 군인이나 정부 관리들에게 국제법을 위반하는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