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강령 비판』
인물카를 마르크스, 페르디난트 라살레, 프리드리히 엥겔스 용어고타강령 비판, 노동전수익권, 임금철칙,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 프롤레타리아 독재 학습마르크스: 임금, 가격, 이윤 · 고타강령 비판 · 5장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 6장 두 단계와 부르주아적 권리, 7장 임금철칙과 국가 보조 협동조합, 8장 자유국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의 분기 · 3장 통합 강령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
엥겔스의 서문(1891)
여기에 발표하는 원고, 곧 브라케에게 보낸 첨부 편지와 강령 초안에 대한 비판은 1875년 고타 통합 대회 직전에, 가이프, 아우어, 베벨,[3] 리프크네히트에게 전달한 뒤 마르크스에게 돌려보내 달라는 뜻으로 브라케에게 보내진 것이다. 할레 당 대회가 고타강령의 토론을 당의 의사일정에 올렸으므로, 이 토론과 관련해 중요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 문서를 더 이상 공개하지 않고 묻어 둔다면 나는 은폐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원고에는 또 하나의, 더 멀리 미치는 의의가 있다. 라살레가 자기 선동의 맨 처음부터 취한 노선에 대한 마르크스의 태도가, 라살레의 경제적 원칙에 관해서나 그의 전술에 관해서나, 여기서 처음으로 분명하고 단호하게 서술되어 있다.
강령 초안이 여기서 해부되는 가차없는 엄격함, 얻어진 결과가 진술되고 초안의 결함이 드러나는 무자비함, 이 모든 것은 15년이 지난 오늘날 더 이상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없다. 특정한 라살레파는 이제 외국에 고립된 폐허로만 존재하며, 할레에서 고타강령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서조차 전혀 불충분한 것으로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본질적이지 않은 곳에서는 몇몇 날카로운 개인적 표현과 평가를 빼고 점으로 대신했다. 마르크스 자신이 오늘 이 원고를 발표했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몇몇 대목에서 언어가 격렬한 것은 두 가지 사정 때문이었다. 첫째, 마르크스와 나는 다른 어느 나라의 운동보다 독일의 운동과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강령 초안이 보여 주는 명백한 후퇴에 특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둘째, 우리는 그때 인터내셔널의 헤이그 대회로부터 채 두 해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바쿠닌과 그의 무정부주의자들에 맞서 가장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들은 독일 노동운동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강령의 숨은 아버지라는 혐의까지 뒤집어쓰리라고 예상해야 했다. 이런 사정은 이제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문제의 대목들도 필요하지 않다.
출판법에서 생기는 이유로도 몇몇 문장을 점으로만 표시했다. 더 부드러운 표현을 골라야 했던 곳은 대괄호로 묶었다. 그 밖에는 본문을 한 자 한 자 그대로 재현했다.
런던, 1891년 1월 6일
프리드리히 엥겔스
브라운슈바이크의 W. 브라케에게
런던, 1875년 5월 5일
친애하는 브라케,
통합 강령에 대한 다음의 비판적 여백 논평을 읽고 나면, 수고스럽더라도 가이프와 아우어, 베벨과 리프크네히트에게 검토하도록 보내 주기 바라오. 나는 지독히 바쁘고, 의사들이 허락한 일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고 있소. 그러니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즐거움」이 아니었소. 그러나 이것은 필요했소. 내가 나중에 취할 조치가, 이 글의 수신자인 당 안의 우리 친구들에게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통합 대회가 열리고 나면 엥겔스와 나는 우리의 입장이 문제의 원칙 강령과는 전혀 거리가 멀며 우리는 그것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취지의 짧은 성명을 발표할 것이오.
이것은 꼭 필요한 일이오. 우리가 이곳에서 이른바 아이제나흐 당의 운동을 은밀히 지도한다는 의견, 전적으로 틀린 의견이 외국에서 유포되고 당의 적들에 의해 부지런히 길러지고 있기 때문이오. 최근에 나온 러시아어 책[『국가와 무정부』]에서 바쿠닌은 예를 들어 그 당의 모든 강령 따위뿐 아니라 리프크네히트가 인민당과 협력한 날부터 취한 모든 조치의 책임까지 여전히 내게 지우고 있소.
이것을 제쳐 두더라도, 내 생각에 당의 사기를 꺾는 철저히 못마땅한 강령을 외교적 침묵으로나마 인정하지 않는 것이 내 의무요.
현실 운동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열두 개의 강령보다 중요하오. 그러므로 아이제나흐 강령을 넘어설 수 없었다면, 그리고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공동의 적에 맞선 행동의 협정을 맺는 데서 그쳤어야 했소. 그런데 (상당한 기간의 공동 활동으로 준비될 때까지 미루는 대신) 원칙 강령을 작성함으로써, 온 세상 앞에 당 운동의 수준을 재는 이정표를 세워 놓은 것이오.
라살레파의 지도자들이 온 것은 사정이 그들을 몰아붙였기 때문이오. 원칙을 두고 흥정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말해 주었더라면 그들은 행동 강령이나 공동 행동을 위한 조직 계획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오. 그런데 그러는 대신 그들이 위임장으로 무장하고 오도록 허락하고, 이쪽에서 그 위임장을 구속력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그렇게 해서 스스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무조건 굴복한 것이오. 일을 마무리 짓느라 그들은 타협 대회 전에 대회를 열고, 우리 쪽 당은 사후에 대회를 여는 것이오. 온갖 비판을 억누르고 자기 당에는 숙고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 했던 것이 분명하오. 통합이라는 사실 자체가 노동자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알지만, 이 일시적 성공이 너무 비싸게 산 것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오.
그 밖에도 이 강령은, 라살레파의 신조를 신성화한 것을 제쳐 두더라도, 쓸모가 없소.
가까운 시일 안에 『자본론』 프랑스어판의 마지막 분책들을 보내겠소. 인쇄는 프랑스 정부의 금지로 상당히 오래 지체되었소. 이번 주나 다음 주 초에는 끝날 것이오. 앞의 여섯 분책은 받았소? 베른하르트 베커의 주소를 알려 주시오. 그에게도 마지막 분책들을 보내야 하오.
『폴크스슈타트』 서점은 일하는 방식이 별나오.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까지 『쾰른 공산주의자 재판』을 한 부도 보내 주지 않았소.
안부를 전하며,
당신의 카를 마르크스
해설: 왜 강령 하나에 이렇게까지 하는가
본문에 앞서 마르크스는 브라케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원칙을 적어 넣은 문서의 무게다. 「현실 운동의 한 걸음이 열두 개의 강령보다 중요하다」는 문장이 그것을 말한다.
합치는 것이 급하면 원칙 없이 합치면 된다. 그러나 일단 원칙이라고 적어서 내걸면, 그 문장들은 당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보여 주는 공적 기준이 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 강령과 자신들은 무관하다는 것을 언젠가 밝히겠다고 편지에 못 박아 두는 이유다. 이어지는 본문은 이 기준으로 강령을 한 문장씩 검사한 기록이다.
편지 끝의 사무적인 몇 줄은 이 논평이 어떤 사정에서 쓰였는지를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프랑스어판의 교정과 발송에 매달려 있었고, 의사의 만류를 넘어 일하고 있었다. 「즐거움이 아니었다」는 말은 겸사가 아니다.
제1부
1. 「노동은 모든 부와 모든 문화의 원천이다. 그리고 유익한 노동은 오직 사회 안에서, 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노동의 수익은 감소되지 않고 평등한 권리에 따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속한다.」
문단의 첫 부분: 「노동은 모든 부와 모든 문화의 원천이다.」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이 아니다. 자연도 노동과 꼭 같이 사용가치의 원천이며(물질적 부는 바로 그런 사용가치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 자체는 하나의 자연력인 인간 노동력의 발현일 뿐이다. 위의 문구는 모든 어린이 입문서에 나오는 것이고, 노동이 그에 딸린 대상과 도구를 가지고 수행된다는 것이 함축되어 있는 한에서는 옳다. 그러나 사회주의 강령은 이런 부르주아적 문구가, 그것에 비로소 뜻을 주는 조건들을 침묵 속에 지나쳐 버리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간이 처음부터 모든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의 첫째 원천인 자연에 대해 소유자로서 행동하고 자연을 자기 것으로 다루는 한에서, 그의 노동은 사용가치의 원천, 따라서 부의 원천이 된다. 부르주아들이 노동에 초자연적 창조력을 거짓으로 갖다 붙이는 데에는 아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노동이 자연에 의존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자기 노동력 말고는 아무 소유도 없는 인간은 어떤 사회와 문화의 상태에서든 노동의 물질적 조건의 소유자가 된 다른 인간들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노동할 수 있고, 따라서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
이제 이 문장을 그 서 있는 대로, 아니 그보다 절뚝거리는 대로 놓아두자. 결론으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분명히 이것이다.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이므로, 사회의 누구도 노동의 생산물로서가 아니면 부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남의 노동으로 살아가며, 자기 문화도 남의 노동을 대가로 얻는다.」
그런데 그러는 대신 「그리고 …이므로」라는 접속의 다리를 놓아 두 번째 명제가 덧붙여지고, 첫 번째가 아니라 이 두 번째 명제에서 결론이 끌어내진다.
문단의 둘째 부분: 「유익한 노동은 오직 사회 안에서, 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첫 명제에 따르면 노동은 모든 부와 모든 문화의 원천이었다. 그러므로 노동 없이는 어떤 사회도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거꾸로, 사회 없이는 어떤 「유익한」 노동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오직 사회 안에서만 무익하고 심지어 사회에 해로운 노동도 돈벌이 직업의 한 갈래가 될 수 있다고, 오직 사회 안에서만 빈둥거리며 살 수 있다고, 등등, 한마디로 루소 전체를 베껴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유익한」 노동이란 무엇인가? 물론 의도한 유익한 결과를 낳는 노동뿐이다. 돌로 짐승을 잡고 열매를 모으는 따위를 하는 야만인(인간은 원숭이이기를 그친 뒤 야만인이었다)은 「유익한」 노동을 하는 것이다.
셋째, 결론: 「유익한 노동은 오직 사회 안에서, 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노동의 수익은 감소되지 않고 평등한 권리에 따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속한다.」
훌륭한 결론이다! 유익한 노동이 오직 사회 안에서, 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노동의 수익은 사회에 속한다. 그리고 개별 노동자에게는 노동의 「조건」인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만큼만 돌아온다.
실제로 이 명제는 어느 시대에나 그때그때 지배하는 사회 상태의 옹호자들이 써먹어 온 것이다. 먼저 정부와 정부에 달라붙은 모든 것의 요구가 온다. 정부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사회적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온갖 종류의 사적 소유의 요구가 온다. 온갖 종류의 사적 소유는 사회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등등. 이런 공허한 문구는 마음대로 비틀고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단의 첫 부분과 둘째 부분은 오직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만 어떤 알아들을 수 있는 연관을 갖는다.
「노동은 오직 사회적 노동으로서만 부와 문화의 원천이 된다」, 또는 같은 말이지만 「사회 안에서, 사회를 통해서만」.
이 명제는 논박할 여지 없이 옳다. 고립된 노동은 (그 물질적 조건이 전제된다면) 사용가치를 만들 수는 있어도 부도 문화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똑같이 논박할 여지 없는 것이 이 다른 명제다.
「노동이 사회적으로 발전하고 그로써 부와 문화의 원천이 되는 것에 비례하여, 노동자에게는 빈곤과 궁핍이, 노동하지 않는 자에게는 부와 문화가 발전한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노동」과 「사회」에 관한 일반적 문구를 늘어놓는 대신 해야 했던 것은,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이 사회적 저주를 걷어 낼 수 있게 하고 또 그렇게 하도록 강제하는 물질적 조건 따위가 마침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문체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엉망으로 꿰맞춘 이 문단 전체는 오직 라살레의 표어인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을 당의 깃발 꼭대기에 구호로 새겨 넣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다. 「노동수익」, 「평등한 권리」 따위는 뒤에 좀 다른 형태로 같은 것이 다시 나오므로 그때 돌아오겠다.
해설: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인가
노동자 정당의 강령이 노동을 치켜세우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싶지만, 마르크스는 첫 문장부터 자른다. 부는 노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토지, 원료, 자연력이 있어야 노동이 무언가를 만든다. 이것은 사소한 학술적 트집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어서, 노동에 초자연적 창조력을 갖다 붙이는 화법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짚는다.
노동이 모든 것을 만든다고만 말하면, 노동이 무엇 없이는 아무것도 못 만드는지가 가려진다. 노동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 곧 토지와 생산수단을 누가 쥐고 있느냐는 질문이 사라지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노동 찬가가 아니라 바로 그 질문이다. 강령이 첫 문장에서 놓친 것이 그것이다.
둘째 문장의 「유익한 노동은 오직 사회 안에서만 가능하다」에 대해서도 마르크스는 짧게 처리한다. 이 문장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노동의 수익이 모두에게 속한다는 것이 아니라, 노동할 수 없는 사회 구성원도 사회가 부양해야 한다는 정도다. 그리고 「감소되지 않고 평등한 권리에 따라 모두에게」라는 결론부에는 양자택일이 숨어 있다. 일하지 않는 구성원에게도 나눠 준다면 「감소되지 않은」 수익이 남지 않고, 일하는 사람에게만 준다면 「모든 구성원의 평등한 권리」가 남지 않는다. 두 미사여구는 한 문장 안에서 서로를 무너뜨린다.
2. 「오늘날의 사회에서 노동수단은 자본가계급의 독점물이다. 이에 의해 조건 지어진 노동자계급의 종속이 모든 형태의 빈곤과 예속의 원인이다.」
인터내셔널 규약에서 빌려 온 이 문장은 이 「개선된」 판에서는 틀렸다.[4]
오늘날의 사회에서 노동수단은 토지소유자(토지 소유의 독점은 자본 독점의 토대이기까지 하다)와 자본가의 독점물이다. 문제의 대목에서 인터내셔널 규약은 이쪽 독점자 계급도 저쪽 독점자 계급도 이름 붙이지 않는다. 규약은 「노동수단, 곧 생활 원천의 독점자」를 말한다. 「생활 원천」이라는 덧붙임은 토지가 노동수단에 포함된다는 것을 충분히 분명하게 해 준다.
이 수정이 들어온 것은 라살레가 이제는 널리 알려진 이유로 오직 자본가계급만 공격하고 토지소유자는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자본가는 보통 자기 공장이 서 있는 토지의 소유자조차 아니다.
해설: 지워진 토지소유자
이 문장은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규약의 한 구절을 가져다 「손질」한 것인데, 마르크스는 그 손질에서 무엇이 지워졌는지를 지적한다. 원래 규약은 노동수단, 곧 생활 원천의 독점자를 말했고, 거기에는 자본가만이 아니라 토지소유자가 들어 있었다. 고타 초안은 토지소유자를 지우고 자본가계급만 남겼다.
이것은 우연한 누락이 아니라 라살레의 유산이다. 라살레는 자본가계급만 공격했고 토지 귀족은 건드리지 않았다. 프로이센의 지주 세력과 비스마르크 정부에 맞서기보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주적으로 놓고 국가와는 거래할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 그의 정치였기 때문이다. 강령의 한 단어 차이가 정치 노선의 차이를 그대로 실어 나른다.
3. 「노동의 해방은 노동수단을 사회의 공동재산으로 끌어올리고, 총노동을 협동조합적으로 규제하며, 노동수익을 공정하게 분배할 것을 요구한다.」
「노동수단을 공동재산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분명 「공동재산으로 전환한다」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가는 말이다.
「노동수익」이란 무엇인가? 노동의 생산물인가, 그 가치인가? 후자라면 생산물의 총가치인가, 아니면 노동이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에 새로 덧붙인 가치 부분만인가?
「노동수익」은 라살레가 명확한 경제학적 개념들 대신 갖다 놓은 느슨한 관념이다.
「공정한 분배」란 무엇인가?
부르주아들은 오늘날의 분배가 「공정하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오늘날의 생산양식의 토대 위에서는 유일하게 「공정한」 분배가 아닌가? 경제 관계가 법적 관념에 의해 규제되는가, 아니면 거꾸로 법적 관계가 경제 관계에서 생겨나는가? 사회주의 종파들도 「공정한」 분배에 관해 가장 잡다한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공정한 분배」라는 문구가 이 연관에서 무엇을 함축하는지 이해하려면 첫째 문단과 이 문단을 함께 놓아야 한다. 이 문단은 노동수단이 공동재산이고 총노동이 협동조합적으로 규제되는 사회를 전제하며, 첫째 문단에서 우리는 「노동수익은 감소되지 않고 평등한 권리에 따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속한다」는 것을 배운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노동하지 않는 구성원에게도? 그러면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에서 무엇이 남는가? 노동하는 구성원에게만? 그러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평등한 권리」에서 무엇이 남는가?
그러나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평등한 권리」는 분명 그저 문구일 뿐이다. 알맹이는 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모든 노동자가 라살레식의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을 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우선 「노동수익」이라는 말을 노동의 생산물이라는 뜻으로 잡아 보자. 그러면 협동조합적 노동수익은 사회의 총생산물이다.
여기서 이제 다음을 공제해야 한다. 첫째, 소모된 생산수단을 대체할 부분. 둘째, 생산 확대를 위한 추가 부분. 셋째, 사고와 자연재해에 따른 교란 따위에 대비한 예비 기금 또는 보험 기금.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에서의 이 공제는 경제적 필연이며, 그 크기는 쓸 수 있는 수단과 힘에 따라,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확률 계산에 따라 정해져야 하지만, 공정함으로는 결코 계산할 수 없다.
총생산물의 다른 부분, 소비수단으로 쓰이도록 정해진 부분이 남는다.
이것이 개인들 사이에 분배되기 전에 여기서 다시 공제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생산에 속하지 않는 일반 관리 비용. 이 부분은 처음부터 오늘의 사회에 견주어 매우 크게 제한되며, 새 사회가 발전하는 것에 비례해 줄어든다. 둘째, 학교, 보건 시설 등 공동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쓰이는 부분. 이 부분은 처음부터 오늘의 사회에 견주어 크게 늘어나며, 새 사회가 발전하는 것에 비례해 늘어난다. 셋째,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 등을 위한 기금, 한마디로 오늘날 이른바 공적 빈민 구제에 속하는 것을 위한 기금.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강령이 라살레의 영향 아래 편협하게 오직 그것만 염두에 둔 「분배」에, 곧 협동조합 사회의 개별 생산자들 사이에 분배되는 소비수단의 부분에 이른다.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은 어느새 「감소된」 수익으로 바뀌었다. 다만 생산자가 사적 개인의 자격으로 빼앗긴 것은 사회 구성원의 자격으로 직접 또는 간접으로 그에게 이롭게 돌아온다.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이라는 문구가 사라졌듯이, 이제 「노동수익」이라는 문구도 아예 사라진다.
생산수단의 공동소유에 근거한 협동조합적 사회 안에서 생산자들은 자기 생산물을 교환하지 않는다. 생산물에 쓰인 노동이 여기서 그 생산물의 가치로, 그것이 지닌 물적 성질로 나타나는 일도 마찬가지로 없다.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개인의 노동이 우회로를 거쳐서가 아니라 직접 총노동의 구성 부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그 애매함 때문에 못마땅한 「노동수익」이라는 문구는 이렇게 모든 뜻을 잃는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는 것은 그 자신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막 나온 공산주의 사회다. 따라서 이 사회는 모든 면에서,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기가 그 태내에서 나온 낡은 사회의 모반을 아직 지니고 있다. 그에 따라 개별 생산자는 공제가 이루어진 뒤, 자기가 사회에 준 것을 정확히 되돌려 받는다. 그가 사회에 준 것은 자기 개인의 노동량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노동일은 개별 노동시간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개별 생산자의 개인적 노동시간은 그가 기여한 사회적 노동일의 부분, 그 안에서의 그의 몫이다. 그는 (공동 기금을 위한 노동을 공제한 뒤) 이러이러한 양의 노동을 제공했다는 증서를 사회에서 받고, 이 증서로 사회의 소비수단 재고에서 같은 양의 노동이 든 만큼을 꺼내 간다. 그가 한 형태로 사회에 준 것과 같은 양의 노동을 그는 다른 형태로 되돌려 받는다.
여기서는 분명 상품 교환이 등가 교환인 한에서 그것을 규제하는 것과 같은 원리가 지배한다. 내용과 형태는 바뀌었다. 달라진 사정 아래서는 누구도 자기 노동 말고는 아무것도 줄 수 없고, 다른 한편 개인적 소비수단 말고는 아무것도 개인의 소유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자가 개별 생산자들 사이에 분배되는 것에 관한 한, 상품 등가물의 교환에서와 같은 원리가 지배한다. 한 형태의 일정한 양의 노동이 다른 형태의 같은 양의 노동과 교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평등한 권리는 여전히 원칙상 부르주아적 권리다. 다만 원칙과 실제가 더 이상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데, 상품 교환에서 등가물의 교환은 평균적으로만 존재하고 개별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진보에도 불구하고 이 평등한 권리에는 여전히 부르주아적 한계가 붙어 있다. 생산자의 권리는 그가 제공하는 노동에 비례한다. 평등은 같은 잣대, 곧 노동으로 잰다는 데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뛰어나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노동을 제공하거나 더 오래 노동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이 척도로 쓰이려면 그 지속시간이나 강도로 규정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측정의 잣대이기를 그친다. 이 평등한 권리는 불평등한 노동에 대한 불평등한 권리다. 그것은 계급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누구나 남과 똑같이 노동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불평등한 재능을, 따라서 불평등한 생산 능력을 자연적 특권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모든 권리가 그렇듯 그 내용에서는 불평등의 권리다. 권리는 그 본성상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데서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불평등한 개인들은(그리고 불평등하지 않다면 그들은 서로 다른 개인이 아닐 것이다) 같은 관점 아래 놓이고 한 특정한 측면에서만 파악되는 한에서만, 이를테면 지금의 경우 오직 노동자로만 여겨지고 그 밖의 모든 것은 무시되는 한에서만 같은 잣대로 잴 수 있다. 더 나아가, 어떤 노동자는 결혼했고 다른 노동자는 하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다른 이보다 아이가 많다, 등등. 그러므로 같은 노동을 하고 따라서 사회적 소비 기금에서 같은 몫을 받아도, 실제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받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부유해지는 등의 일이 생긴다. 이 모든 폐단을 피하려면 권리는 평등하기는커녕 불평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폐단은 오랜 진통 끝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막 나온 공산주의 사회의 첫째 단계에서는 피할 수 없다. 권리는 결코 사회의 경제적 구조와, 그것이 조건 짓는 사회의 문화 발전보다 높을 수 없다.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서, 곧 분업에 대한 개인의 예속적 종속이 사라지고 그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도 사라진 뒤에, 노동이 생계의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첫째 욕구가 된 뒤에,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협동적 부의 모든 샘이 더욱 넘치게 흐르게 된 뒤에, 그때에야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좁은 지평을 완전히 넘어설 수 있으며, 사회는 자기 깃발에 이렇게 쓸 수 있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내가 한편으로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을, 다른 한편으로 「평등한 권리」와 「공정한 분배」를 이렇게 길게 다룬 것은, 한편으로 어떤 시기에는 얼마간 뜻이 있었으나 이제는 낡아빠진 말의 쓰레기가 된 관념들을 다시 도그마로 우리 당에 강요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 당에 심어 넣느라 그토록 애를 먹었지만 이제는 당에 뿌리내린 현실주의적 견해를 민주주의자들과 프랑스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그토록 흔한 권리 따위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헛소리로 다시 왜곡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보이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제쳐 두더라도, 이른바 분배를 두고 법석을 떨며 거기에 주된 강조를 두는 것은 대체로 잘못이었다.
소비수단의 어떤 분배든 생산조건 자체의 분배에서 나오는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 후자의 분배는 생산양식 자체의 성격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물질적 생산조건이 자본 소유와 토지 소유의 형태로 비노동자의 손에 있고, 대중은 인적 생산조건인 노동력만을 소유한다는 데 근거한다. 생산의 요소들이 이렇게 분배되어 있으면 오늘날의 소비수단 분배는 저절로 따라 나온다. 물질적 생산조건이 노동자 자신들의 협동조합적 소유라면 오늘과는 다른 소비수단의 분배가 마찬가지로 저절로 따라 나온다. 속류 사회주의는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아 민주주의자들의 한 부분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로부터 분배를 생산양식과 독립된 것으로 고찰하고 다루는 법을, 그리하여 사회주의를 주로 분배를 중심으로 도는 것으로 그리는 법을 물려받았다. 진정한 관계가 오래전에 밝혀졌는데, 왜 다시 뒤로 돌아가는가?
해설: 공제 목록, 두 단계, 속류 사회주의
마르크스는 우선 「공정한 분배」라는 말을 심문한다. 부르주아들도 오늘의 분배가 공정하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실제로 오늘의 분배는 오늘의 생산양식의 토대 위에서는 유일하게 「공정한」 분배가 아닌가? 분배의 공정함은 시대를 초월한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양식이 정하는 문제인데, 강령은 그것을 도덕의 언어로 적었다.
다음으로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이라는 구호를 계산대에 올린다. 이 구호는 라살레파의 핵심 요구인 노동전수익권, 곧 노동자가 자기 노동이 낳은 수익 전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공동소유 위에 선 사회를 가정하고, 사회의 총생산물에서 무엇을 먼저 떼야 하는지를 따라가 본다. 기계는 닳고, 생산은 늘려야 하고, 재해는 닥친다. 학교와 병원은 운영해야 하고, 일할 수 없는 사람은 부양해야 한다. 이 공제들은 어떤 사회형태에서도 피할 수 없는 경제적 필연이며, 자본주의를 없앤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감소되지 않은」 수익은 이 목록을 지나면서 저절로 「감소된」 수익이 된다. 마르크스는 다만, 생산자가 개인 자격으로 공제당한 것은 학교와 보건과 부조라는 형태로, 사회 구성원 자격으로 그에게 되돌아온다고 덧붙인다.
요컨대 라살레의 구호는 어느 사회에서도 성립할 수 없는 산수다. 그런데 이 구호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자기 저작 어디에서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가 분배를 어떻게 조직할지를 직접 서술하는 것이다. 이 문서가 유명해진 것은 대부분 그 대목 때문이다.
낮은 단계. 자본주의에서 이제 막 나온 사회에서 생산자는 사회에 제공한 노동량을 증명하는 증서를 받고, 공제분을 뺀 만큼을 사회의 소비 재고에서 꺼내 간다. 여섯 시간 일한 사람은 여섯 시간어치의 소비수단을 받는다. 개인들 사이의 상품 교환은 사라졌지만, 같은 양의 노동을 다른 형태로 돌려받는다는 원리, 곧 등가교환의 원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마르크스는 이 분배 원리를 「부르주아적 권리」라고 부른다. 자본가가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노동이라는 같은 잣대 하나를 대는 권리 형식이 상품 사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 결함을 도덕적으로 규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결함이 왜 불가피한지를 말한다. 권리는 결코 사회의 경제 구조보다 높을 수 없다. 사회가 어떤 분배를 할 수 있는가는 선언이 아니라 그 사회의 경제적 조건이 정한다. 이 두 단계 구분과 그것이 20세기에 겪은 운명은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 항목에 따로 정리되어 있다.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낮은 단계를 사회주의, 높은 단계를 공산주의라고 부르면서 20세기의 표준 어법이 된 대목이기도 하다.
높은 단계.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는 이 문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이다. 눈여겨볼 것은 조건들의 성격이다. 국가가 무엇을 소유한다거나 어떤 법을 선포한다는 조건이 하나도 없다. 조건은 전부 노동 자체의 변화다. 사람이 분업의 부속품이기를 그치는 것, 시키는 노동과 생각하는 노동의 분리가 사라지는 것, 노동이 밥벌이를 넘어 하고 싶은 일이 되는 것. 필요에 따른 분배는 그런 변화의 결과로만 온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사회가 아직 노동에 따라 나누고 있다면 그 사회는 아직 낮은 단계에 있는 것이고, 거기 남은 불평등은 그 단계의 경제적 조건에 속한다. 이 구분은 예언의 시간표가 아니라 진단의 도구다.
속류 사회주의. 두 단계를 서술한 뒤 마르크스는 논의 전체를 접으며, 애초에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해야 했는지를 묻는다. 답은 강령이 분배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몫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만 말하고 생산조건, 곧 공장과 토지와 기계가 누구 것인가를 묻지 않는 사회주의를, 마르크스는 속류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분배는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문서 전체를 관통하는 축이고, 마르크스가 10년 전 『임금, 가격, 이윤』에서 임금 투쟁에 대해 내린 결론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임금 인상은 필요하지만 목표는 임금제도 자체의 폐지라는 것, 분배 개선은 필요하지만 사회주의는 생산조건의 소유를 바꾸는 것이라는 것.
4. 「노동의 해방은 노동자계급의 사업이어야 한다. 그에 대하여 다른 모든 계급은 하나의 반동적 대중일 뿐이다.」
첫 시구는 인터내셔널 규약의 서두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개선」되었다. 거기서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사업이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는 거꾸로 「노동자계급」이 무엇을 해방해야 하는가? 「노동」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라.
그 대신 대구 쪽은 순도 높은 라살레의 인용이다. 「그에 대하여」(노동자계급에 대하여) 「다른 모든 계급은 하나의 반동적 대중일 뿐이다.」
『공산당 선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마주 선 모든 계급 가운데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계급들은 대공업과 더불어 쇠퇴하고 몰락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대공업의 가장 고유한 산물이다.」
여기서 부르주아지는 낡은 생산양식이 만들어 낸 모든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 드는 봉건 영주와 소시민에 대해 혁명적 계급으로, 대공업의 담지자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부르주아지와 함께 「하나의 반동적 대중일 뿐」인 것을 이루지 않는다.
다른 한편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에 대해 혁명적이다. 자신이 대공업의 토대 위에서 자라났으므로, 부르주아지가 영구화하려 드는 자본주의적 성격을 생산에서 벗겨 내려 애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언』은 「소시민층」이 「프롤레타리아트로 넘어갈 자기의 처지를 내다보고」 혁명적이 된다고 덧붙인다.
그러므로 이 관점에서도, 소시민층이 부르주아지와 함께, 게다가 봉건 영주까지 덤으로 얹어 노동자계급에 대해 「하나의 반동적 대중일 뿐인 것을 이룬다」고 말하는 것은 다시금 헛소리다.
지난 선거 때 수공업자, 소공업가 등과 농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던가? 우리에 대해 여러분은 부르주아지 및 봉건 영주와 함께 하나의 반동적 대중을 이룬다고?
라살레는 『공산당 선언』을 외우고 있었다. 그의 충실한 신자들이 그가 쓴 복음서를 외우듯이. 그러므로 그가 그것을 이토록 심하게 위조했다면, 그것은 오직 부르주아지에 맞서 절대주의·봉건 반대파와 맺은 자기 동맹을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위의 문단에서 그의 신탁 같은 격언은 인터내셔널 규약에서 망쳐 놓은 인용과 아무 연관도 없이 억지로 끌려 들어와 있다. 그러니 그것은 그저 무례일 뿐이고, 사실 비스마르크 씨에게는 조금도 불쾌하지 않은 무례이며, 베를린의 마라가 팔고 다니는 저 값싼 오만 가운데 하나다.[5]
해설: 「하나의 반동적 대중」
첫 문장은 국제노동자협회 규약에서 온 것이지만, 둘째 문장은 라살레의 표어다. 노동자가 아닌 모든 계급, 곧 자본가와 지주만이 아니라 농민과 수공업자와 소상인까지 몽땅 하나의 반동 덩어리로 묶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의 해당 대목을 자기 인용으로 맞세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유일하게 철저히 혁명적인 계급이라는 것과, 나머지 전부가 반동적 대중이라는 것은 다른 명제다. 몰락해 가는 중간층들은 몰락에 맞서 싸우는 한에서 보수적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로 넘어갈 처지를 내다보고 움직일 때는 혁명적일 수 있다. 그들을 처음부터 반동 대중으로 묶어 버리는 표어는 분석이 아니라, 라살레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에 맞서던 시절 자기 정파를 정당화하려고 만든 구호다. 통합 강령에 이 구호를 새겨 넣은 것은 이론을 적은 것이 아니라 라살레 종파의 도장을 찍은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지적한다. 농민이 인구의 다수인 나라에서 이 표어가 어떤 정치로 이어질지는 말할 것도 없다.
5.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우선 오늘날의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활동하며, 모든 문명국 노동자들에게 공통된 자기 노력의 필연적 결과가 민족들의 국제적 형제애가 되리라는 것을 의식한다.」
라살레는 『공산당 선언』과 그 이전의 모든 사회주의에 맞서 노동운동을 가장 편협한 국민적 관점에서 파악했다. 그런데 이 점에서 그를 따르고 있다. 그것도 인터내셔널의 활동 뒤에!
싸울 수 있으려면 노동자계급이 자기 나라에서 계급으로서 조직되어야 하고, 자기 나라가 그 투쟁의 직접적 무대라는 것은 전적으로 자명하다. 그런 한에서 그 계급투쟁은 내용에서가 아니라 『공산당 선언』의 말대로 「형태에서」 국민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민국가의 틀」, 예를 들어 독일 제국은 그 자신이 다시 경제적으로는 세계시장의 「틀 안에」, 정치적으로는 국가 체계의 「틀 안에」 있다. 모든 사업가는 독일의 무역이 동시에 외국 무역이라는 것을 알고, 비스마르크 씨의 위대함은 확실히 바로 그가 일종의 국제 정책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독일 노동자당은 자기 국제주의를 무엇으로 줄이는가? 자기 노력의 결과가 「민족들의 국제적 형제애」가 되리라는 의식으로. 부르주아 평화자유동맹[6]에서 빌려 온 이 문구는 지배계급과 그 정부들에 맞선 공동 투쟁에서의 노동자계급들의 국제적 형제애와 같은 것으로 통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독일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기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노동자계급은, 이미 다른 모든 나라의 부르주아와 형제애로 뭉쳐 자기에게 맞서고 있는 자기 나라 부르주아지와, 비스마르크 씨의 국제적 음모 정책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강령의 국제주의는 자유무역파의 국제주의보다도 한없이 아래에 있다. 자유무역파 역시 자기 노력의 결과가 「민족들의 국제적 형제애」가 되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무역을 국제적으로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도 하며, 모든 민족이 자기 나라 안에서 무역을 하고 있다는 의식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활동은 국제노동자협회의 존재에 조금도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그 활동을 위한 중앙 기관을 만들려는 첫 시도였을 뿐이다. 그것이 준 자극 덕분에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 시도였지만, 파리 코뮌의 몰락 뒤에는 그 역사적 형태로는 더 이상 실현될 수 없는 시도였다.
비스마르크의 『노르트도이체』가 주인을 만족시키며 독일 노동자당이 새 강령에서 국제주의를 버렸다고 알린 것은 전적으로 옳았다.
해설: 국제주의가 지워진 자리
마르크스도 노동자계급이 싸움의 무대로서 우선 자기 나라에서 싸운다는 것 자체는 인정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노동운동의 국제주의가 「민족들의 국제적 형제애」라는 막연한 덕담으로 줄어들었다. 이것은 부르주아 평화자유동맹에서 빌려 온 문구이지, 지배계급들의 연합 정책에 맞서는 노동자계급들의 공동 투쟁이라는 국제적 기능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독일 노동자당의 국제주의 신조가 이 정도라면 자유무역파의 국제주의보다도 한없이 아래에 있다고 쓰고, 실제로 비스마르크의 기관지가 이 대목을 읽고 독일 노동자당이 새 강령에서 국제주의를 버렸다고 만족스럽게 논평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국제노동자협회에 관한 한 문단은 마르크스 자신의 회고이기도 하다. 제1인터내셔널은 1872년 헤이그 대회 뒤 사실상 활동을 멈추었고 1876년에 공식 해산된다. 그는 그것이 「첫 시도」였고 파리 코뮌 이후에는 그 형태로는 되풀이될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활동은 조직의 존속과 무관하다고 못 박는다.
제2부
「이러한 원칙들에서 출발하여 독일 노동자당은 모든 합법적 수단을 다하여 자유로운 국가와 사회주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 임금철칙과 함께 임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모든 형태의 착취를 없애고 모든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유로운」 국가에 대해서는 뒤에 돌아오겠다.
그러니 앞으로 독일 노동자당은 라살레의 「임금철칙」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없어지지 않도록, 「임금철칙과 함께」 「임금제도의 폐지」(임금노동 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를 말하는 헛소리가 저질러진다. 내가 임금노동을 폐지하면 당연히 그 법칙들도 폐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철」이든 스펀지든. 그러나 라살레의 임금노동 공격은 거의 오로지 이 이른바 법칙을 축으로 돈다. 그러므로 라살레 종파가 이겼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임금제도」가 「임금철칙과 함께」 폐지되어야 하며, 그것 없이 폐지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임금철칙」에서 라살레의 것이라고는 괴테의 「위대하고 영원한 철의 법칙」에서 빌려 온 「철의」라는 낱말뿐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7] 「철의」라는 낱말은 진정한 신자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표지다. 그러나 내가 이 법칙을 라살레의 도장이 찍힌 채로, 따라서 그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그것을 그의 논거와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그 논거는 무엇인가? 라살레가 죽은 직후 랑게가 이미 보였듯이, 그것은 (랑게 자신이 설교한)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이 옳다면, 나는 임금노동을 백 번 폐지해도 이 법칙을 다시 폐지할 수 없다. 그러면 이 법칙은 임금노동 제도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제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에 근거하여 경제학자들은 50년도 넘게, 사회주의는 자연에 근거를 둔 빈곤을 없앨 수 없고 다만 그것을 일반화하여 사회의 표면 전체에 동시에 고루 나누어 줄 수 있을 뿐이라고 증명해 왔다![8]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주된 것이 아니다. 라살레의 법칙 정식화가 틀렸다는 것을 완전히 제쳐 두더라도, 참으로 분노할 만한 후퇴는 다음에 있다.
라살레가 죽은 뒤 우리 당에는 임금이 그 겉모습처럼 노동의 가치 또는 가격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 또는 가격의 가면을 쓴 형태일 뿐이라는 과학적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이로써 종래의 부르주아적 임금관 전체가 그에 대해 지금까지 가해진 모든 비판과 함께 단번에 영원히 폐기되었다. 임금노동자는 자본가를 위해(따라서 자본가와 함께 잉여가치를 소비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일정한 시간을 무상으로 일하는 한에서만 자기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것, 곧 사는 것을 허락받는다는 것,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 전체는 노동일의 연장이나 생산성의 발전, 곧 노동력의 강도 증대 등에 의해 이 무상 노동을 늘리는 것을 축으로 돈다는 것, 따라서 임금노동 제도는 노예제, 그것도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발전하는 것에 비례하여, 노동자가 더 나은 보수를 받든 더 나쁜 보수를 받든, 더 가혹해지는 노예제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런데 이 인식이 우리 당에서 점점 더 널리 자리 잡은 뒤에, 라살레가 임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뒤를 따라 겉모습을 사태의 본질로 여겼다는 것을 알았음이 틀림없는데도, 라살레의 도그마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마침내 노예제의 비밀을 꿰뚫어 보고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 가운데, 아직 낡은 관념에 사로잡힌 한 노예가 반란의 강령에 이렇게 써넣는 것과 같다. 노예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노예제 아래서 노예의 급식은 일정한 낮은 최대치를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당의 대표자들이 우리 당 대중 사이에 퍼진 인식에 이토록 끔찍한 공격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이 타협 강령을 작성하며 얼마나 범죄적인 경솔함과 양심의 결여로 일에 나섰는지가 증명되지 않는가!
문단의 막연한 끝 문구인 「모든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의 제거」 대신, 계급 차이의 폐지와 함께 거기서 생기는 모든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은 저절로 사라진다고 말했어야 했다.
해설: 임금철칙, 라살레의 것은 낱말 하나뿐
임금철칙은 라살레 이론의 주춧돌이다. 임금이 일시적으로 올라도 인구가 늘고 노동자 사이의 경쟁이 심해져 결국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되돌아간다는 주장으로, 여기서 노동조합 무용론과 국가 구원론이 곧장 따라 나온다. 임금 투쟁이 자연법칙에 막혀 있다면, 남는 길은 국가의 도움으로 임금제도 바깥에 협동조합을 세우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첫 반박은 내용물이 낡은 재고품이라는 것이다. 임금이 생존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논리 자체는 튀르고와 리카도 시대의 생존임금론이고, 그 근거는 맬서스주의 인구론이다. 그런데 근거가 맬서스 인구론이라면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인구 법칙은 임금노동 체제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체제에 작용할 것이므로, 임금노동을 백 번 폐지해도 그 법칙은 살아남는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은 바로 그 논리로 50년 넘게, 사회주의는 빈곤을 없애지 못하고 사회 전체에 고루 퍼뜨릴 뿐이라고 논증해 왔다. 라살레의 「법칙」을 강령에 새기는 것은 적의 논거를 당의 원칙으로 삼는 일이다.
더 뼈아픈 지적은 시점이다. 라살레가 죽은 뒤 당 안에는 임금이 노동의 값이 아니라 노동력의 값이 가면을 쓴 형태라는 과학적 인식이 자리 잡았다. 임금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종래의 부르주아적 임금관은 그에 대한 비판과 함께 통째로 폐기되었는데, 강령은 그 뒤에 쓰였으면서 다시 라살레의 교리로 돌아갔다. 노예 급식의 비유가 그 후퇴의 크기를 재는 자다.
문제는 임금이 철칙에 묶여 낮다는 것이 아니라 임금노동이라는 형태 자체다. 낮은 임금이 문제라면 처방은 국가의 자선이지만, 임금노동이 문제라면 처방은 생산조건의 소유를 바꾸는 것이다. 임금철칙이 어떻게 노동자를 임금기금설과 같은 자리, 곧 투쟁 무용론에 데려다 놓는지는 임금기금설 항목과 『임금, 가격, 이윤』의 웨스턴 논쟁에서 이어 볼 수 있다.
제3부
「독일 노동자당은 사회문제의 해결에 길을 열기 위하여, 노동인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 국가의 보조를 받는 생산협동조합의 설립을 요구한다. 생산협동조합은 공업과 농업에서, 사회주의적 총노동 조직이 그로부터 생겨날 만한 규모로 일으켜야 한다.」
라살레의 「임금철칙」 다음에는 이 예언자의 처방약이다. 거기로 가는 길은 걸맞게 「열린다」. 현존하는 계급투쟁 대신 신문쟁이의 문구인 「사회 문제」가 들어서고, 그 「해결」에 「길을 연다」.
「사회주의적 총노동 조직」은 사회의 혁명적 전화 과정에서 생겨나는 대신, 국가가 생산협동조합에 주는 「국가 보조」에서, 그리고 노동자가 아니라 국가가 「일으키는」 협동조합에서 「생겨난다」. 국가 융자로 새 철도를 놓듯 새 사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라살레의 상상력에나 어울리는 일이다!
남은 부끄러움 때문에 「국가 보조」는 「노동인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 놓였다.
첫째, 독일에서 「노동인민」의 다수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농민이다.
둘째, 「민주적」은 독일어로 「인민지배적(volksherrschaftlich)」이다. 그런데 「노동인민의 인민지배적 통제」란 무슨 뜻인가? 게다가 국가에 이런 요구를 함으로써 자기가 통치하고 있지도 않고 통치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온전히 표명하는 노동인민의 경우에!
루이 필리프 치하에서 뷔셰[9]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에 맞서 처방하고 『아틀리에』의 반동적 노동자들이 받아들인 이 처방전에 대한 비판을 여기서 다루는 것은 쓸데없을 것이다. 주된 잘못은 이 특효약을 강령에 새겨 넣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계급운동의 관점에서 종파운동의 관점으로 한 걸음 후퇴한 데 있다.
노동자들이 사회적 규모로, 우선은 자기 나라의 국민적 규모로 협동조합적 생산의 조건을 세우려 한다는 것은 그들이 오늘의 생산조건을 변혁하기 위해 일한다는 뜻일 뿐이며, 국가 보조로 협동조합을 세우는 것과는 아무 공통점도 없다. 그러나 오늘의 협동조합들에 관해 말하면, 그것들은 정부의 피후견물도 부르주아의 피후견물도 아닌 노동자 자신의 독립적 창조물인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
해설: 철도를 놓듯 새 사회를 지을 수 있는가
임금철칙의 처방전이 강령 제3부에 그대로 들어왔다. 마르크스의 답은 한 문장으로 족하다. 국가 융자로 새 사회를 짓는 것도 새 철도를 놓듯 할 수 있다는 것은 라살레의 상상력에나 어울리는 일이라는 것.
계급투쟁 대신 종파적 해법이 들어선 것이다. 사회주의적 노동조직은 사회의 혁명적 전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국가가 돈을 대어 「불러낸」 협동조합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협동조합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기준은 조직 형태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가다. 정부의 피후견물도 부르주아의 피후견물도 아닌 노동자 자신의 독립적 창조물인 한에서만 협동조합은 가치가 있다.
덧붙는 지적 하나가 강령의 급소를 찌른다. 「노동인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독일에서 노동인민의 다수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농민이다. 그리고 국가에 이런 것을 요구하는 인민은, 자기가 통치하고 있지도 않고 통치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표명하는 셈이다. 국가가 무엇을 해 주면 사회주의가 온다는 발상 전체에 대한 이 거부는, 다음 부의 주제로 곧장 이어진다.
제4부
이제 민주주의 부분으로 온다.
A. 「국가의 자유로운 기초.」
먼저, 제2부에 따르면 독일 노동자당은 「자유로운 국가」를 이루려 한다.
자유로운 국가, 그것은 무엇인가?
신민적 근성을 벗어 버린 노동자들에게 국가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결코 목표가 아니다. 독일 제국에서 「국가」는 러시아에서와 거의 마찬가지로 「자유롭다」. 자유는 국가를 사회 위에 올라앉은 기관에서 사회에 완전히 종속된 기관으로 바꾸는 데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국가 형태들은 「국가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도만큼 더 자유롭거나 덜 자유롭다.
독일 노동자당은, 적어도 이 강령을 채택한다면, 자기의 사회주의 사상이 피부 한 겹 깊이도 못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현존 사회를(그리고 이것은 어떤 미래 사회에도 해당하는데) 현존 국가의(미래 사회의 경우에는 미래 국가의) 토대로 다루는 대신, 국가를 고유한 정신적·윤리적·자유적 토대를 가진 독립된 실체처럼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령이 「오늘날의 국가」, 「오늘날의 사회」라는 말을 난폭하게 오용하고, 자기 요구를 들이대는 국가에 관해 그보다 더 난폭한 오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떤가?
「오늘날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그것은 모든 문명국에 존재하며, 중세의 혼합물에서 얼마쯤 벗어나 있고, 각 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발전에 따라 얼마쯤 변형되어 있으며, 얼마쯤 발전해 있다. 반면 「오늘날의 국가」는 나라의 국경과 함께 바뀐다. 그것은 프로이센-독일 제국에서와 스위스에서가 다르고, 영국에서와 미국에서가 다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국가」는 허구다.
그럼에도 여러 문명국의 여러 국가는 그 잡다한 형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모두 이 공통점을 갖는다. 그것들이 현대 부르주아 사회의 토대 위에 서 있고, 다만 그 사회가 자본주의적으로 얼마쯤 더 발전했느냐 덜 발전했느냐만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몇 가지 본질적 특징도 공유한다. 이 뜻에서 그 현재의 뿌리인 부르주아 사회가 사멸해 버린 미래와 대비하여 「오늘날의 국가」를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물음이 생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어떤 변화를 겪는가? 다시 말해 거기서는 오늘의 국가 기능과 비슷한 어떤 사회적 기능이 남아 있는가? 이 물음에는 과학적으로만 답할 수 있으며, 인민이라는 낱말을 국가라는 낱말과 천 번 결합해도 문제에 벼룩 한 뜀만큼도 더 다가가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전화의 시기가 놓여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 이행기도 대응하는데, 이 시기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말고는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없다.
그런데 강령은 이것도, 공산주의 사회의 미래 국가도 다루지 않는다.
강령의 정치적 요구는 누구나 아는 낡은 민주주의의 기도문, 곧 보통선거권, 직접입법, 인민의 권리, 인민군 따위를 넘어서는 것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부르주아 인민당의, 평화자유동맹의 단순한 메아리다. 그것들은 모두 공상적인 표현으로 과장되지 않은 한에서는 이미 실현된 요구다. 다만 그것들이 속한 국가가 독일 제국의 국경 안이 아니라 스위스와 미국 등에 있을 뿐이다. 이런 종류의 「미래 국가」는 비록 독일 제국의 「틀」 밖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국가다.
그러나 한 가지를 잊었다. 독일 노동자당은 자기가 「오늘날의 국민국가」 안에서, 따라서 자기 국가인 프로이센-독일 제국 안에서 활동한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하므로(그렇지 않다면 그 요구들은 대부분 무의미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만 요구하기 때문이다), 주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곧 이 온갖 예쁜 장신구들이 이른바 인민주권의 인정 위에 서 있고, 따라서 민주공화국에서만 제자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루이 필리프 치하와 루이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 노동자 강령들이 그랬듯이 민주공화국을 요구할 용기가 없으니(그리고 사정이 신중을 요구하므로 현명하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정직하지도」[10] 점잖지도 않은 속임수, 곧 의회 형식으로 장식되고 봉건적 혼합물과 섞이고 이미 부르주아지의 영향을 받았으며 관료적으로 짜맞춰진 경찰 감시 군사 전제국가에 지나지 않는 국가에 대고 민주공화국에서만 뜻을 갖는 것들을 요구하는 속임수에 기대어서도 안 되었고, 게다가 그런 것들을 「합법적 수단으로」 이 국가에 강요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고 이 국가에 장담해서도 안 되었다.
민주공화국에서 천년왕국을 보며, 계급투쟁이 최종적으로 결판나야 하는 곳이 바로 부르주아 사회의 이 마지막 국가 형태라는 것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는 속류 민주주의조차, 경찰이 허락하고 논리가 허락하지 않는 한계 안에 머무는 이런 종류의 민주주의보다는 산더미만큼 높은 곳에 있다.
「국가」라는 말로 사실은 정부 기구, 곧 분업에 의해 사회에서 분리된 특수한 유기체를 이루는 한에서의 국가를 뜻한다는 것은 「독일 노동자당은 국가의 경제적 기초로서 단일 누진 소득세 등을 요구한다」는 말이 보여 준다. 세금은 정부 기구의 경제적 기초이지 다른 무엇의 기초도 아니다. 스위스에 존재하는 미래 국가에서 이 요구는 꽤 잘 충족되어 있다. 소득세는 여러 사회계급의 여러 소득원을,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를 전제한다. 그러므로 글래드스턴의 형제를 우두머리로 한 부르주아들인 리버풀의 재정개혁파가 강령과 같은 요구를 내세우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해설: 자유국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용기 없는 강령
강령 제2부가 목표로 내건 「자유로운 국가」로 마르크스는 되돌아온다. 국가의 자유가 커질수록 사회의 자유는 줄어든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강령의 근본 결함은, 현존 사회를 현존 국가의 토대로 다루는 대신 국가를 저 홀로 서 있는 실체처럼, 고유한 정신적·윤리적 토대를 가진 무언가처럼 다룬다는 데 있다. 사회가 국가를 낳는 것이지 국가가 사회를 낳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국가」라는 말조차 엄밀히는 허구다. 현재의 사회는 어디서나 자본주의 사회지만 현재의 국가는 국경을 넘을 때마다 다르며, 다만 문명국들의 국가가 모두 부르주아 사회의 토대 위에 서 있다는 공통점에서만 그 말을 쓸 수 있다.
그러면 물어야 할 질문은 국가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가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어떤 변화를 겪는가다. 마르크스는 이 물음에 과학적으로만 답할 수 있으며, 인민이라는 낱말과 국가라는 낱말을 천 번 결합해 「인민국가」를 만들어도 문제에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한다고 못 박은 뒤, 이 문서에서 가장 압축된 문장을 쓴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의 혁명적 전화기에 대응하는 정치적 이행기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말고는 다른 것일 수 없다는 것.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이 마르크스 자신의 글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규정되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훗날 레닌이 『국가와 혁명』 제5장 전체를 이 대목의 주석에 바치면서, 이행기 국가론과 앞의 두 단계론을 하나의 논증으로 엮었다. 20세기 정치 어휘에 이 문서가 남긴 자취의 대부분이 그 장을 거쳐 전해졌다.
강령 제4부는 「국가의 자유로운 기초」로 보통·평등·직접 선거권, 직접입법, 인민무장 같은 요구들을 나열했다. 마르크스는 요구 자체가 아니라 요구의 주소를 문제 삼는다. 이런 민주주의적 요구들은 민주공화국에서만 뜻을 갖는다. 그런데 강령은 민주공화국을 요구할 용기가 없으면서, 관료와 경찰이 지키는 군사적 전제국가인 프로이센-독일 제국을 향해 그 요구들을 「합법적 수단으로」 관철하겠다고 적었다. 게다가 그 요구들의 대부분은 이미 스위스와 미국 같은 나라에서 실현되어 있었다.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이룰 수 없는 곳에 대고 말하는 이 태도를 마르크스는 신랄하게 평가한다. 민주공화국만 세우면 천년왕국이 온다고 믿는 속류 민주주의조차, 이런 민주주의보다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다고.
B. 「독일 노동자당은 국가의 정신적·윤리적 기초로서 다음을 요구한다. 1. 국가에 의한 보편적이고 평등한 인민교육. 보편적 취학 의무. 무상 교육.」
「평등한 인민교육」? 이 말 뒤에는 어떤 생각이 있는가? 오늘날의 사회에서(그리고 다루어야 할 것은 이 사회뿐이다) 교육이 모든 계급에게 평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아니면 상층계급도 임금노동자뿐 아니라 농민의 경제적 조건과도 양립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인 초등학교라는 적은 양의 교육으로 강제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인가?
「보편적 취학 의무. 무상 교육.」 앞의 것은 독일에도 있고, 뒤의 것은 초등학교의 경우 스위스와 미국에 있다. 미국의 몇몇 주에서 고등교육 기관도 「무상」이라면, 그것은 사실 상층계급의 교육비를 일반 조세 수입에서 대 준다는 뜻일 뿐이다. 덧붙여 말하면 A항 5에서 요구된 「무상 사법」도 마찬가지다. 형사 사법은 어디서나 무상이다. 민사 사법은 거의 오로지 소유를 둘러싼 분쟁을 다루며, 따라서 거의 오로지 유산계급에 관계된다. 그들이 국고의 비용으로 소송을 하란 말인가?
학교에 관한 이 문단은 적어도 초등학교와 결합된 (이론과 실습의) 기술학교를 요구했어야 했다.
「국가에 의한 인민교육」은 전적으로 못마땅하다. 초등학교의 재원, 교원의 자격, 교과목 등을 일반 법률로 정하고, 미국에서 하듯이 국가 감독관이 이 법규의 이행을 감독하는 것과, 국가를 인민의 교육자로 임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오히려 정부와 교회를 다 같이 학교에 대한 일체의 영향에서 배제해야 한다. 특히 프로이센-독일 제국에서는(그리고 「미래 국가」를 말하는 것이라는 썩은 속임수로 도피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사정이 어떤지는 앞에서 보았다) 거꾸로 국가야말로 인민에게서 매우 엄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강령 전체는 그 민주주의적 울림에도 불구하고 라살레 종파의 국가에 대한 신민적 신앙, 또는 그보다 나을 것 없는 민주주의적 기적 신앙에 속속들이 물들어 있다. 아니 그보다는, 둘 다 사회주의에서 똑같이 멀리 떨어진 이 두 종류의 기적 신앙 사이의 타협이다.
「과학의 자유」는 프로이센 헌법의 한 조항에 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양심의 자유」! 문화투쟁의 이 시기에 자유주의에 그 옛 표어들을 상기시키고 싶었다면, 그것은 분명 다음과 같은 형태로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경찰이 코를 들이밀지 않는 가운데 자기의 종교적 욕구와 육체적 욕구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당은 어쨌든 이 연관에서, 부르주아적 「양심의 자유」란 온갖 종류의 종교적 양심의 자유를 관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노동자당 쪽에서는 오히려 양심을 종교의 요술에서 해방하려 애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음을 표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적」 수준을 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제 끝에 이르렀다. 강령에서 다음에 오는 부록은 강령의 특징적 구성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우 짧게 할 수 있다.
해설: 국가는 인민의 교육자가 아니다
강령은 「국가에 의한 인민교육」을 요구했다. 마르크스의 답은 국가 개입의 두 형태를 가르는 데서 나온다. 공적 기준과 공적 재정은 필요하지만, 무엇을 가르칠지를 정하는 교육자의 자리에 국가를 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의 재원과 교원 자격과 교과목을 법으로 정하고 감독관을 두는 것과, 국가를 인민의 교육자로 임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더구나 프로이센-독일 제국에서는 국가야말로 인민에게서 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종교 조항에 대한 논평도 같은 결을 따른다. 강령의 「양심의 자유」는 온갖 종교적 양심을 국가가 관용한다는 부르주아적 문구의 되풀이일 뿐이고, 노동자당이라면 종교라는 유령에서 양심을 해방하는 데까지 나아가려 한다는 것을 말했어야 한다. 다만 마르크스는 그것을 강령에 새기는 것이 시기상 적절한지는 별개 문제로 남겨 둔다. 「문화투쟁」은 1870년대 비스마르크 정부와 가톨릭 교회의 충돌을 가리킨다.
부록
「2. 정상 노동일.」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자당은 이렇게 막연한 요구에 그치지 않고, 주어진 사정 아래서 정상이라고 여기는 노동일의 길이를 언제나 확정했다.
「3. 여성 노동의 제한과 아동 노동의 금지.」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길이, 휴식 시간 등에 관계되는 한에서 여성 노동의 제한을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여성의 신체에 특히 해롭거나 여성에게 도덕적으로 못마땅한 산업 부문에서 여성 노동을 배제한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그런 뜻이었다면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아동 노동의 금지.」 여기서는 연령 한계를 밝히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동 노동의 일반적 금지는 대공업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공허하고 경건한 소망이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실현이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그것은 반동적일 것이다. 연령 집단에 따른 노동시간의 엄격한 규제와 아동 보호를 위한 그 밖의 안전 조치가 있다면, 생산적 노동을 교육과 이른 시기부터 결합하는 것은 오늘의 사회를 변혁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4. 공장, 작업장, 가내 공업에 대한 국가의 감독.」
프로이센-독일 국가를 고려하면, 감독관은 법원에 의해서만 해임될 수 있고, 어떤 노동자든 직무 태만으로 그들을 고발할 수 있으며, 그들은 의료인이어야 한다고 분명히 요구했어야 했다.
「5. 감옥 노동의 규제.」
일반적 노동자 강령에 들어가기에는 좀스러운 요구다. 어쨌든 경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반 범죄자를 짐승처럼 다루도록 놓아둘 뜻은 없으며, 특히 그들의 유일한 개선 수단인 생산적 노동을 그들에게서 빼앗을 뜻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어야 했다. 이것은 확실히 사회주의자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이었다.
「6. 실효성 있는 책임법.」
「실효성 있는」 책임법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했어야 했다.
덧붙여 말하면, 정상 노동일을 말하면서 보건 규정과 안전 조치 등을 다루는 공장 입법의 부분은 빠뜨렸다. 책임법은 이 규정들이 침해되었을 때에야 작동한다.
요컨대 이 부록도 엉성한 편집이 두드러진다.
Dixi et salvavi animam meam.[11]
[나는 말하였고 내 영혼을 구하였다.]
읽고 나서: 나는 말하였고 내 영혼을 구하였다
부록에 대한 논평은 짧지만 같은 정신이다. 정상 노동일을 요구하면서 표준 시간을 적지 않은 것, 아동노동을 「금지」한다고만 적은 것을 마르크스는 짚는다. 특히 아동노동에 대한 논평은 뜻밖의 방향이다. 아동노동의 전면 금지는 대공업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는 공허한 소망이며, 실현된다 해도 반동적이라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연령에 따른 엄격한 노동시간 규제와 보호 조치이고, 이른 나이부터 생산적 노동을 교육과 결합하는 것은 오히려 현 사회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수단의 하나다. 노동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노동의 인간화가 기준인 것이다.
문서는 라틴어 한 문장으로 끝난다. 경고할 것을 경고했으니 책임을 다했다는 뜻이다. 실제 역사는 마르크스의 경고를 절반쯤 따라갔다. 고타강령은 그대로 채택되었고 당은 그 강령으로 16년을 성장했지만, 1891년 에르푸르트 강령에서 라살레주의 공식들은 걷혀 나갔고, 이 문서는 바로 그 개정 논의 한가운데에 발표되어 개정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임금 투쟁은 필요하지만 목표는 임금제도의 폐지라는 1865년의 결론과, 분배가 아니라 생산조건의 소유를 물으라는 1875년의 결론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 문서가 학습 코스에서 『임금, 가격, 이윤』과 한 권으로 묶여 있는 이유다.
읽기 전에: 고타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875년 5월, 독일의 두 노동자 정당이 튀링겐의 소도시 고타에서 하나로 합쳤다. 한쪽은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와 아우구스트 베벨이 이끌던 사회민주노동자당, 곧 아이제나흐파로,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가까운 흐름이었다. 다른 쪽은 전독일노동자협회, 곧 라살레파였다.
라살레파의 창시자 페르디난트 라살레는 1864년에 이미 결투로 죽고 없었지만, 그의 이론은 조직과 함께 살아 있었다. 라살레의 사회주의는 대략 세 기둥으로 서 있었다. 첫째, 임금은 아무리 올라도 결국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되돌아간다는 임금철칙. 둘째, 그러므로 임금 투쟁과 노동조합은 헛수고이고, 노동자를 구할 길은 국가의 자금 지원으로 생산협동조합을 세우는 것이라는 처방. 셋째, 그 국가를 움직일 수단으로서의 보통선거권. 노동자가 투표로 국가를 잡으면 국가가 사회주의를 지어 준다는 그림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신앙이었고, 고타의 통합 강령 초안은 이 신앙의 문구들로 가득했다.
마르크스는 병상에서 초안을 받아 읽고, 여백에 조목조목 논평을 달아 브라케에게 보냈다. 당 지도부만 돌려 보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통합을 앞둔 지도부는 논평을 사실상 묵살했고, 강령은 거의 그대로 채택되었다. 이 문서가 세상에 나온 것은 16년 뒤인 1891년, 당이 고타강령을 에르푸르트 강령으로 바꾸는 개정 논의를 시작했을 때다. 엥겔스는 라살레주의 공식들이 또다시 살아남는 것을 막으려고 마르크스의 원고를 공개했다. 문서의 배경과 판본에 관한 사전 항목은 고타강령 비판에 따로 정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