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강령 비판』 전문 해설
인물카를 마르크스, 페르디난트 라살레, 프리드리히 엥겔스 용어고타강령 비판, 노동전수익권, 임금철칙,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 문서를 읽기 전에: 고타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875년 5월, 독일의 두 노동자 정당이 튀링겐의 소도시 고타에서 하나로 합쳤다. 한쪽은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와 아우구스트 베벨이 이끌던 사회민주노동자당, 곧 아이제나흐파로,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가까운 흐름이었다. 다른 쪽은 전독일노동자협회, 곧 라살레파였다.
라살레파의 창시자 페르디난트 라살레는 1864년에 이미 결투로 죽고 없었지만, 그의 이론은 조직과 함께 살아 있었다. 라살레의 사회주의는 대략 세 기둥으로 서 있었다. 첫째, 임금은 아무리 올라도 결국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되돌아간다는 임금철칙. 둘째, 그러므로 임금 투쟁과 노동조합은 헛수고이고, 노동자를 구할 길은 국가의 자금 지원으로 생산협동조합을 세우는 것이라는 처방. 셋째, 그 국가를 움직일 수단으로서의 보통선거권. 노동자가 투표로 국가를 잡으면 국가가 사회주의를 지어 준다는 그림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신앙이었고, 고타의 통합 강령 초안은 이 신앙의 문구들로 가득했다.
마르크스는 병상에서 초안을 받아 읽고, 여백에 조목조목 논평을 달아 브라케에게 보냈다. 당 지도부만 돌려 보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통합을 앞둔 지도부는 논평을 사실상 묵살했고, 강령은 거의 그대로 채택되었다. 이 문서가 세상에 나온 것은 16년 뒤인 1891년, 당이 고타강령을 에르푸르트 강령으로 바꾸는 개정 논의를 시작했을 때다. 엥겔스는 라살레주의 공식들이 또다시 살아남는 것을 막으려고 마르크스의 원고를 공개했다. 문서의 배경과 판본에 관한 사전 항목은 고타강령 비판에 따로 정리되어 있다.
브라케에게 보낸 편지: 왜 강령 하나에 이렇게까지 하는가
본문에 앞서 마르크스는 브라케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통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원칙을 적어 넣은 문서의 무게다.
현실 운동의 한 걸음이 열두 개의 강령보다 중요하다.
원칙 강령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공동의 적에 맞서는 행동 합의에 그쳤어야 했다. … 강령을 만든다는 것은 온 세상 앞에, 당 운동의 수준을 재는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합치는 것이 급하면 원칙 없이 합치면 된다. 그러나 일단 원칙이라고 적어서 내걸면, 그 문장들은 당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보여 주는 공적 기준이 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 강령과 자신들은 무관하다는 것을 언젠가 밝히겠다고 편지에 못 박아 두는 이유다. 이어지는 본문은 이 기준으로 강령을 한 문장씩 검사한 기록이다.
제1절: 노동, 분배, 그리고 두 단계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인가
강령 초안의 첫 조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노동은 모든 부와 모든 문화의 원천이다. 그리고 유익한 노동은 오직 사회 안에서, 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노동의 수익은 감소되지 않고 평등한 권리에 따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속한다.
노동자 정당의 강령이 노동을 치켜세우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싶지만, 마르크스는 첫 문장부터 자른다.
노동은 모든 부의 원천이 아니다. 자연도 노동과 꼭 같이 사용가치의 원천이며(물질적 부는 바로 그런 사용가치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 자체는 하나의 자연력인 인간 노동력의 발현일 뿐이다.
부는 노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토지, 원료, 자연력이 있어야 노동이 무언가를 만든다. 이것은 사소한 학술적 트집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어서, 노동에 초자연적 창조력을 갖다 붙이는 화법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짚는다.
부르주아들이 노동에 초자연적 창조력을 갖다 붙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노동이 자연에 제약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자기 노동력 말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인간은 어떤 사회·문화 상태에서든 노동의 물질적 조건을 소유한 다른 인간의 노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노동할 수 있고, 따라서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
노동이 모든 것을 만든다고만 말하면, 노동이 무엇 없이는 아무것도 못 만드는지가 가려진다. 노동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 곧 토지와 생산수단을 누가 쥐고 있느냐는 질문이 사라지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노동 찬가가 아니라 바로 그 질문이다. 강령이 첫 문장에서 놓친 것이 그것이다.
둘째 문장의 「유익한 노동은 오직 사회 안에서만 가능하다」에 대해서도 마르크스는 짧게 처리한다. 이 문장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노동의 수익이 모두에게 속한다는 것이 아니라, 노동할 수 없는 사회 구성원도 사회가 부양해야 한다는 정도다. 그리고 「감소되지 않고 평등한 권리에 따라 모두에게」라는 결론부에는 양자택일이 숨어 있다. 일하지 않는 구성원에게도 나눠 준다면 「감소되지 않은」 수익이 남지 않고, 일하는 사람에게만 준다면 「모든 구성원의 평등한 권리」가 남지 않는다. 두 미사여구는 한 문장 안에서 서로를 무너뜨린다.
노동수단의 독점: 지워진 토지소유자
강령 초안의 둘째 조항.
오늘날의 사회에서 노동수단은 자본가계급의 독점물이다. 이에 의해 조건 지어진 노동자계급의 종속이 모든 형태의 빈곤과 예속의 원인이다.
이 문장은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규약의 한 구절을 가져다 「손질」한 것인데, 마르크스는 그 손질에서 무엇이 지워졌는지를 지적한다. 원래 규약은 노동수단, 곧 생활 원천의 독점자를 말했고, 거기에는 자본가만이 아니라 토지소유자가 들어 있었다. 고타 초안은 토지소유자를 지우고 자본가계급만 남겼다.
이것은 우연한 누락이 아니라 라살레의 유산이다. 라살레는 자본가계급만 공격했고 토지 귀족은 건드리지 않았다. 프로이센의 지주 세력과 비스마르크 정부에 맞서기보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주적으로 놓고 국가와는 거래할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 그의 정치였기 때문이다. 강령의 한 단어 차이가 정치 노선의 차이를 그대로 실어 나른다.
공정한 분배란 무엇인가: 공제 목록
셋째 조항은 노동 해방의 내용을 이렇게 적었다.
노동의 해방은 노동수단을 사회의 공동재산으로 끌어올리고, 총노동을 협동조합적으로 규제하며, 노동수익을 공정하게 분배할 것을 요구한다.
마르크스는 우선 「공정한 분배」라는 말을 심문한다. 부르주아들도 오늘의 분배가 공정하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실제로 오늘의 분배는 오늘의 생산양식의 토대 위에서는 유일하게 「공정한」 분배가 아닌가? 분배의 공정함은 시대를 초월한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양식이 정하는 문제인데, 강령은 그것을 도덕의 언어로 적었다.
다음으로 「감소되지 않은 노동수익」이라는 구호를 계산대에 올린다. 이 구호는 라살레파의 핵심 요구인 노동전수익권, 곧 노동자가 자기 노동이 낳은 수익 전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공동소유 위에 선 사회를 가정하고, 사회의 총생산물에서 무엇을 먼저 떼야 하는지를 따라가 본다.
「사회의 총생산물」에서 공제해야 할 것. 첫째, 소모된 생산수단을 대체할 부분. 둘째, 생산 확대를 위한 추가 부분. 셋째, 사고와 자연재해 따위에 대비한 예비 기금 또는 보험 기금. … 남은 부분이 소비수단으로 쓰이는데, 이것이 개인들에게 분배되기 전에 다시 공제해야 할 것. 첫째, 생산에 직접 속하지 않는 일반 관리 비용. … 둘째, 학교나 보건 시설처럼 공동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쓰이는 부분. … 셋째,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기금.
기계는 닳고, 생산은 늘려야 하고, 재해는 닥친다. 학교와 병원은 운영해야 하고, 일할 수 없는 사람은 부양해야 한다. 이 공제들은 어떤 사회형태에서도 피할 수 없는 경제적 필연이며, 자본주의를 없앤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감소되지 않은」 수익은 이 목록을 지나면서 저절로 「감소된」 수익이 된다. 마르크스는 다만, 생산자가 개인 자격으로 공제당한 것은 학교와 보건과 부조라는 형태로, 사회 구성원 자격으로 그에게 되돌아온다고 덧붙인다.
요컨대 라살레의 구호는 어느 사회에서도 성립할 수 없는 산수다. 그런데 이 구호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자기 저작 어디에서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가 분배를 어떻게 조직할지를 직접 서술하는 것이다. 이 문서가 유명해진 것은 대부분 그 대목 때문이다.
낮은 단계: 노동에 따른 분배
여기서 우리가 다루는 것은 그 자신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막 나온 공산주의 사회다. 따라서 이 사회는 모든 면에서,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기가 태어난 낡은 사회의 흔적을 아직 몸에 지니고 있다.
이 단계에서 생산자는 사회에 제공한 노동량을 증명하는 증서를 받고, 공제분을 뺀 만큼을 사회의 소비 재고에서 꺼내 간다. 여섯 시간 일한 사람은 여섯 시간어치의 소비수단을 받는다. 개인들 사이의 상품 교환은 사라졌지만, 같은 양의 노동을 다른 형태로 돌려받는다는 원리, 곧 등가교환의 원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마르크스는 이 분배 원리를 「부르주아적 권리」라고 부른다. 자본가가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노동이라는 같은 잣대 하나를 대는 권리 형식이 상품 사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뛰어나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이 일하거나 더 오래 일할 수 있다. … 이 평등한 권리는 불평등한 노동에 대한 불평등한 권리다. … 또 어떤 노동자는 결혼했고 어떤 노동자는 하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아이가 더 많다. 같은 노동을 하고 사회적 소비 기금에서 같은 몫을 받아도, 실제로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받고 더 부유한 셈이 된다. 이 모든 폐단을 피하려면 권리는 평등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불평등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 결함을 도덕적으로 규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결함이 왜 불가피한지를 말한다.
그러나 이 폐단은, 오랜 진통 끝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막 나온 공산주의 사회의 첫 단계에서는 피할 수 없다. 권리는 결코 사회의 경제적 구조와, 그것이 조건 짓는 문화 발전보다 높을 수 없다.
사회가 어떤 분배를 할 수 있는가는 선언이 아니라 그 사회의 경제적 조건이 정한다. 이 두 단계 구분과 그것이 20세기에 겪은 운명은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 항목에 따로 정리되어 있다.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낮은 단계를 사회주의, 높은 단계를 공산주의라고 부르면서 20세기의 표준 어법이 된 대목이기도 하다.
높은 단계: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그 다음에, 이 문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이 온다.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서, 곧 분업에 대한 개인의 예속적 종속이 사라지고 그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도 사라진 뒤에, 노동이 생계의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첫째 욕구가 된 뒤에,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협동적 부의 모든 샘이 더욱 넘치게 흐르게 된 뒤에, 그때에야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좁은 지평을 완전히 넘어설 수 있으며,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이렇게 쓸 수 있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눈여겨볼 것은 조건들의 성격이다. 국가가 무엇을 소유한다거나 어떤 법을 선포한다는 조건이 하나도 없다. 조건은 전부 노동 자체의 변화다. 사람이 분업의 부속품이기를 그치는 것, 시키는 노동과 생각하는 노동의 분리가 사라지는 것, 노동이 밥벌이를 넘어 하고 싶은 일이 되는 것. 필요에 따른 분배는 그런 변화의 결과로만 온다. 거꾸로 말하면, 어떤 사회가 아직 노동에 따라 나누고 있다면 그 사회는 아직 낮은 단계에 있는 것이고, 거기 남은 불평등은 그 단계의 경제적 조건에 속한다. 이 구분은 예언의 시간표가 아니라 진단의 도구다.
분배를 앞세운 사회주의: 속류 사회주의
두 단계를 서술한 뒤 마르크스는 논의 전체를 접으며, 애초에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해야 했는지를 묻는다. 답은 강령이 분배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소비수단의 어떤 분배든, 생산조건 자체의 분배에서 나오는 결과일 뿐이다.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물질적 생산조건이 자본 소유와 토지 소유의 형태로 비노동자의 손에 있고, 대중은 인적 생산조건인 노동력만을 소유한다는 데 근거한다. 생산의 요소들이 이렇게 분배되어 있으면, 오늘날의 소비수단 분배는 저절로 따라 나온다. 물질적 생산조건이 노동자 자신들의 협동조합적 소유라면, 오늘과는 다른 소비수단의 분배가 마찬가지로 저절로 따라 나온다.
속류 사회주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을 본떠 분배를 생산양식과 독립된 것으로 다루는 법을 물려받았고, 그래서 사회주의가 주로 분배를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그려 왔다. 진정한 관계가 오래전에 밝혀졌는데, 왜 다시 뒤로 돌아가는가?
몫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만 말하고 생산조건, 곧 공장과 토지와 기계가 누구 것인가를 묻지 않는 사회주의를, 마르크스는 속류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분배는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문서 전체를 관통하는 축이고, 마르크스가 10년 전 『임금, 가격, 이윤』에서 임금 투쟁에 대해 내린 결론과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임금 인상은 필요하지만 목표는 임금제도 자체의 폐지라는 것, 분배 개선은 필요하지만 사회주의는 생산조건의 소유를 바꾸는 것이라는 것.
「하나의 반동적 대중」
강령 초안의 넷째 조항.
노동의 해방은 노동자계급의 사업이어야 한다. 그에 대하여 다른 모든 계급은 하나의 반동적 대중일 뿐이다.
첫 문장은 국제노동자협회 규약에서 온 것이지만, 둘째 문장은 라살레의 표어다. 노동자가 아닌 모든 계급, 곧 자본가와 지주만이 아니라 농민과 수공업자와 소상인까지 몽땅 하나의 반동 덩어리로 묶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의 해당 대목을 자기 인용으로 맞세운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마주 선 모든 계급 가운데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계급들은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쇠퇴하고 몰락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대공업 자신의 산물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유일하게 철저히 혁명적인 계급이라는 것과, 나머지 전부가 반동적 대중이라는 것은 다른 명제다. 몰락해 가는 중간층들은 몰락에 맞서 싸우는 한에서 보수적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로 넘어갈 처지를 내다보고 움직일 때는 혁명적일 수 있다. 그들을 처음부터 반동 대중으로 묶어 버리는 표어는 분석이 아니라, 라살레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에 맞서던 시절 자기 정파를 정당화하려고 만든 구호다. 통합 강령에 이 구호를 새겨 넣은 것은 이론을 적은 것이 아니라 라살레 종파의 도장을 찍은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지적한다. 농민이 인구의 다수인 나라에서 이 표어가 어떤 정치로 이어질지는 말할 것도 없다.
국제주의가 지워진 자리
다섯째 조항에서 강령은 노동자계급의 활동 무대를 이렇게 적었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우선 오늘날의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활동하며, 모든 문명국 노동자들의 공통된 노력의 필연적 결과가 민족들의 국제적 형제애가 되리라는 것을 의식한다.
마르크스도 노동자계급이 싸움의 무대로서 우선 자기 나라에서 싸운다는 것 자체는 인정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노동운동의 국제주의가 「민족들의 국제적 형제애」라는 막연한 덕담으로 줄어들었다. 이것은 부르주아 평화·자유 연맹에서 빌려 온 문구이지, 지배계급들의 연합 정책에 맞서는 노동자계급들의 공동 투쟁이라는 국제적 기능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독일 노동자당의 국제주의 신조가 이 정도라면 자유무역파의 국제주의보다도 한없이 아래에 있다고 쓰고, 실제로 비스마르크의 기관지가 이 대목을 읽고 독일 노동자당이 새 강령에서 국제주의를 버렸다고 만족스럽게 논평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제2절: 임금철칙
라살레의 임금철칙이란 무엇인가
강령 제2절은 원칙에서 요구로 넘어가며 이렇게 적었다.
이러한 원칙들에서 출발하여 독일 노동자당은 모든 합법적 수단을 다하여 자유로운 국가와 사회주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 임금철칙과 함께 임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모든 형태의 착취를 없애고 모든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
임금철칙은 라살레 이론의 주춧돌이다. 임금이 일시적으로 올라도 인구가 늘고 노동자 사이의 경쟁이 심해져 결국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되돌아간다는 주장으로, 여기서 노동조합 무용론과 국가 구원론이 곧장 따라 나온다. 임금 투쟁이 자연법칙에 막혀 있다면, 남는 길은 국가의 도움으로 임금제도 바깥에 협동조합을 세우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반박: 라살레의 것은 낱말 하나뿐
이 「법칙」에서 라살레의 것이라고는, 괴테의 「위대하고 영원한 철의 법칙」에서 빌려 온 「철의」라는 낱말 하나뿐이다.
내용물은 낡은 재고품이라는 것이다. 임금이 생존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논리 자체는 튀르고와 리카도 시대의 생존임금론이고, 그 근거는 맬서스주의 인구론이다. 그런데 근거가 맬서스 인구론이라면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인구 법칙은 임금노동 체제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 체제에 작용할 것이므로, 임금노동을 백 번 폐지해도 그 법칙은 살아남는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은 바로 그 논리로 50년 넘게, 사회주의는 빈곤을 없애지 못하고 사회 전체에 고루 퍼뜨릴 뿐이라고 논증해 왔다. 라살레의 「법칙」을 강령에 새기는 것은 적의 논거를 당의 원칙으로 삼는 일이다.
더 뼈아픈 지적은 시점이다. 라살레가 죽은 뒤 당 안에는 임금이 노동의 값이 아니라 노동력의 값이 가면을 쓴 형태라는 과학적 인식이 자리 잡았다. 임금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종래의 부르주아적 임금관은 그에 대한 비판과 함께 통째로 폐기되었는데, 강령은 그 뒤에 쓰였으면서 다시 라살레의 교리로 돌아갔다. 마르크스는 임금노동 체제의 실상을 이렇게 요약한다.
임금노동의 체제는 노예제의 체제다. 노동자가 더 나은 보수를 받든 더 나쁜 보수를 받든,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더 가혹해지는 노예제다.
문제는 임금이 철칙에 묶여 낮다는 것이 아니라 임금노동이라는 형태 자체다. 낮은 임금이 문제라면 처방은 국가의 자선이지만, 임금노동이 문제라면 처방은 생산조건의 소유를 바꾸는 것이다. 임금철칙이 어떻게 노동자를 임금기금설과 같은 자리, 곧 투쟁 무용론에 데려다 놓는지는 임금기금설 항목과 학습 코스 제1편의 웨스턴 논쟁에서 이어 볼 수 있다.
제3절: 국가 보조 협동조합
철도를 놓듯 새 사회를 지을 수 있는가
임금철칙의 처방전이 강령 제3절에 그대로 들어왔다.
독일 노동자당은 사회문제의 해결에 길을 열기 위하여, 노동인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 국가의 보조를 받는 생산협동조합의 설립을 요구한다. 생산협동조합은 공업과 농업에서, 사회주의적 노동조직이 그로부터 생겨날 만한 규모로 일으켜야 한다.
마르크스의 답은 한 문장으로 족하다.
국가 융자로 새 사회를 짓는 것도 새 철도를 놓듯 할 수 있다는 것은, 라살레의 상상력에나 어울리는 일이다!
계급투쟁 대신 종파적 해법이 들어선 것이다. 사회주의적 노동조직은 사회의 혁명적 전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국가가 돈을 대어 「불러낸」 협동조합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협동조합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기준은 조직 형태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가다.
협동조합은 정부의 피후견물도 부르주아의 피후견물도 아닌, 노동자 자신의 독립적 창조물인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
덧붙는 지적 하나가 강령의 급소를 찌른다. 「노동인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독일에서 노동인민의 다수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농민이다. 그리고 국가에 이런 것을 요구하는 인민은, 자기가 통치하고 있지도 않고 통치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표명하는 셈이다. 국가가 무엇을 해 주면 사회주의가 온다는 발상 전체에 대한 이 거부는, 다음 절의 주제로 곧장 이어진다.
제4절: 국가
자유국가란 무엇인가
강령 제2절이 목표로 내건 「자유로운 국가」로 마르크스는 되돌아온다.
자유로운 국가, 그것은 무엇인가? 신민적 근성을 버린 노동자들에게 국가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결코 목표가 아니다. 독일 제국에서 「국가」는 러시아에서와 거의 마찬가지로 「자유롭다」. 자유는 국가를 사회 위에 올라앉은 기관에서 사회에 완전히 종속된 기관으로 바꾸는 데 있다.
국가의 자유가 커질수록 사회의 자유는 줄어든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강령의 근본 결함은, 현존 사회를 현존 국가의 토대로 다루는 대신 국가를 저 홀로 서 있는 실체처럼, 고유한 정신적·윤리적 토대를 가진 무언가처럼 다룬다는 데 있다. 사회가 국가를 낳는 것이지 국가가 사회를 낳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국가」라는 말조차 엄밀히는 허구다. 현재의 사회는 어디서나 자본주의 사회지만 현재의 국가는 국경을 넘을 때마다 다르며, 다만 문명국들의 국가가 모두 부르주아 사회의 토대 위에 서 있다는 공통점에서만 그 말을 쓸 수 있다.
혁명적 이행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러면 물어야 할 질문은 국가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가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어떤 변화를 겪는가다. 마르크스는 이 물음에 과학적으로만 답할 수 있으며, 인민이라는 낱말과 국가라는 낱말을 천 번 결합해 「인민국가」를 만들어도 문제에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한다고 못 박은 뒤, 이 문서에서 가장 압축된 문장을 쓴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전화의 시기가 놓여 있다. 여기에는 정치적 이행기도 대응하는데, 이 시기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외의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없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이 마르크스 자신의 글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규정되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훗날 레닌이 『국가와 혁명』 제5장 전체를 이 대목의 주석에 바치면서, 이행기 국가론과 앞의 두 단계론을 하나의 논증으로 엮었다. 20세기 정치 어휘에 이 문서가 남긴 자취의 대부분이 그 장을 거쳐 전해졌다.
민주주의 요구들: 용기 없는 강령
강령 제4절은 「국가의 자유로운 기초」로 보통·평등·직접 선거권, 직접입법, 인민무장 같은 요구들을 나열했다. 마르크스는 요구 자체가 아니라 요구의 주소를 문제 삼는다. 이런 민주주의적 요구들은 민주공화국에서만 뜻을 갖는다. 그런데 강령은 민주공화국을 요구할 용기가 없으면서, 관료와 경찰이 지키는 군사적 전제국가인 프로이센-독일 제국을 향해 그 요구들을 「합법적 수단으로」 관철하겠다고 적었다. 게다가 그 요구들의 대부분은 이미 스위스와 미국 같은 나라에서 실현되어 있었다.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이룰 수 없는 곳에 대고 말하는 이 태도를 마르크스는 신랄하게 평가한다. 민주공화국만 세우면 천년왕국이 온다고 믿는 속류 민주주의조차, 이런 민주주의보다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다고.
「사회적 요구」 부분에 대한 논평도 같은 정신이다. 정상 노동일을 요구하면서 표준 시간을 적지 않은 것, 아동노동을 「금지」한다고만 적은 것을 마르크스는 짚는다. 특히 아동노동에 대한 논평은 뜻밖의 방향이다. 아동노동의 전면 금지는 대공업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는 공허한 소망이며, 실현된다 해도 반동적이라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연령에 따른 엄격한 노동시간 규제와 보호 조치이고, 이른 나이부터 생산적 노동을 교육과 결합하는 것은 오히려 현 사회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수단의 하나다. 노동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노동의 인간화가 기준인 것이다.
교육과 종교: 국가는 인민의 교육자가 아니다
강령은 「국가에 의한 인민교육」을 요구했다. 마르크스의 답은 국가 개입의 두 형태를 가르는 데서 나온다.
초등학교의 재원, 교원의 자격, 교과 과정을 일반 법률로 정하고 국가 감독관을 두어 그 법규의 이행을 감독하는 것과, 국가를 인민의 교육자로 임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오히려 정부와 교회를 다 같이 학교에 대한 일체의 영향에서 배제해야 한다. 더구나 프로이센-독일 제국에서는 … 거꾸로 국가야말로 인민에게서 매우 엄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공적 기준과 공적 재정은 필요하지만, 무엇을 가르칠지를 정하는 교육자의 자리에 국가를 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 조항에 대한 논평도 같은 결을 따른다. 강령의 「양심의 자유」는 온갖 종교적 양심을 국가가 관용한다는 부르주아적 문구의 되풀이일 뿐이고, 노동자당이라면 종교라는 유령에서 양심을 해방하는 데까지 나아가려 한다는 것을 말했어야 한다. 다만 마르크스는 그것을 강령에 새기는 것이 시기상 적절한지는 별개 문제로 남겨 둔다.
맺음말: 나는 말하였고 내 영혼을 구하였다
문서는 라틴어 한 문장으로 끝난다.
Dixi et salvavi animam meam. 나는 말하였고, 내 영혼을 구하였다.[3]
경고할 것을 경고했으니 책임을 다했다는 뜻이다. 실제 역사는 마르크스의 경고를 절반쯤 따라갔다. 고타강령은 그대로 채택되었고 당은 그 강령으로 16년을 성장했지만, 1891년 에르푸르트 강령에서 라살레주의 공식들은 걷혀 나갔고, 이 문서는 바로 그 개정 논의 한가운데에 발표되어 개정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임금 투쟁은 필요하지만 목표는 임금제도의 폐지라는 1865년의 결론과, 분배가 아니라 생산조건의 소유를 물으라는 1875년의 결론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 문서가 학습 코스에서 『임금, 가격, 이윤』과 한 권으로 묶여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