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그라니에 드 카사냐크

Adolphe Granier de Cassagnac
독립 활동 왕정·왕당파 프랑스 프랑스 1806–1880 ○ 자연사

기조를 옹호하는 독설로 이름을 얻고 1851년 공공연히 제정을 주창한 보나파르트파 언론인·의원

1806년 가스코뉴 제르 도에서 유리 공방을 하던 귀족 집안에 태어났고, 외삼촌 집에서 자라 언론인 리사가레와 사촌 사이다. 1832년 파리에서 언론인이 되었고, 1845년 정치 신문 《레포크》를 세워 기조를 옹호하는 거친 논쟁과 결투로 이름을 얻었다. 1848년 전까지 오를레앙 왕조를 열심히 변호했으나 그 왕조가 무너지자 열렬한 보나파르트파가 되어 쿠데타를 부르짖었다. 1851년 《르 콩스티튀시오넬》에서 공공연히 제정을 주창했다. 1852~1870년 관선 후보로 제르 도의 입법원 의원을 지내며 절대주의와 가톨릭 국교화를 주장하고 언론 자유에 반대했다. 1876년 다시 하원의원에 뽑혔다.

다른 이름: 베르나르 아돌프 그라니에 드 카사냐크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