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시대 우크라이나 정부를 15년간 이끈 도네츠크 출신의 소비에트 경제관리자
«폭발이 중앙 당국에 보고된 것은 몇 시간 이내였지만, 사태의 전모는 이틀이 지나서야 분명해졌습니다.» — 1986년 5월 8일 키예프 기자회견에서 체르노빌 초기 대응의 정보 지연을 설명하며.
도네츠크 공업지대에서 기술자로 출발하여 당 기구를 따라 승진한 랴시코는,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각료회의 의장으로서 공화국 경제를 총괄했다. 15년의 임기는 이 직책 사상 최장기 재임이었으며, 브레즈네프 안정기 전체와 페레스트로이카 출범기를 관통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에는 공화국 정부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고 수습을 지휘했으며, 사고 발생 수 시간 내에 중앙에 보고했으나 전모 파악에는 이틀이 걸렸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셰르비츠키와 함께 우크라이나 당·정을 분담하며 중앙의 정책을 충실히 집행하는 제도적 안정성을 대표했고, 퇴임 후에는 4권의 회고록 《기억의 짐》을 남겼다.
경력 연표
- 1941–1945하리코프 전차학교 졸업, 전차소대장으로 북캅카스 전선 참전, 이후 사마르칸트 전차학교 교관
- 1945–1952노보크라마토르스크 기계제작공장 기술자·부공장장·당조직자
- 1952–1954크라마토르스크 시당위 제1서기
- 1954–1960스탈리노(도네츠크) 주당위 서기 → 제2서기
- 1960–1963도네츠크 주당위 제1서기
- 1963–1966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서기·공업건설국 의장
- 1966–1969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제2서기
- 1969–1972우크라이나 SSR 최고소비에트 상임위원회 의장·소련 최고소비에트 상임위원회 부의장
- 1972–1987우크라이나 SSR 각료회의 의장
- 1986체르노빌 원전 사고 공화국 정부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