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그리고리예비치 슐리흐테르

Александр Григорьевич Шлихтер
소련 러시아 1868–1940 ○ 자연사

첫 농업인민위원에서 우크라이나 학술원 부원장이 된 볼셰비키 농정가

1905년 10월 18일 키이우 시두마 발코니에서 수천 명 앞에서 무장봉기를 호소했다. 이 연설로 그는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았다.

1898년 입당한 노볼셰비키. 혁명 직후 최초의 농업인민위원 대행과 식량인민위원을 지내며 곡물 독점, 무장 징발, 식량분견대 체제를 주도했다. 탐보프 농민반란 진압 실패로 해임된 후 외교관으로 복귀, 1927년부터 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 부원장 겸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장을 맡아 리센코 학설을 초기 후원했다. 소련·우크라이나·벨라루스 세 공화국 과학아카데미 회원.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농업 이론가이자 경제학자

슐리흐테르는 볼셰비키 내에서도 보기 드문, 실무 경험과 학문적 체계화를 겸비한 농정 전문가였다. 시베리아 유형 시절 예니세이현과 투루한스크 지역의 농민·원주민 경제를 실증 조사하여 두 권의 연구서를 출간했고, 이는 통계에 기반한 마르크스주의 농업 분석의 초기 사례로 평가된다.

1927년 우크라이나 농업인민위원으로 복귀한 그는 농공복합단지(агроіндустріальний комбінат) 구상을 적극 추진했다. 이는 농업 생산과 1차 가공·운송·유통을 수직 통합하는 대규모 국영 단지를 형성하려는 구상으로, 집단화 이전 단계에서 국영 농업 부문을 통해 사회주의적 농업 전환의 거점을 만들려는 시도였다. 이 구상은 할곡제(продразверстка)와 식량분견대 시절의 강제 징발 경험 위에 선 것으로, 자본주의적 중간 유통 단계를 제거함으로써 도시-농촌 간 직접 교환을 실현하려는 목표를 지녔다.

1931년 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 부원장에 취임한 뒤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장과 VUAMLIN(전우크라이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 연합) 의장을 겸하며 학계에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제도화를 주도했다. 그는 농업 문제를 단순한 생산력 문제가 아니라 계급 관계와 유통 구조의 총체로 파악했으며, 이는 당대 소련 농업경제학의 정통 노선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1928년 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1933년 벨라루스 과학아카데미 회원, 1930년 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산하 공산주의 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36년에는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트로핌 리센코의 학설을 초기부터 후원한 것도 이러한 제도적·이론적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저작은 사후에도 『소비에트 권력 초기 농업 문제와 식량 정책』(1975), 『사회주의 건설의 경제적 토대』(1982) 등으로 재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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