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에게 의석을 양보한 날 선 양심의 법학자
훗날 카잔니크는 그 결정을 이렇게 돌아봤다: "모스크바에서 옐친에게 투표한 사람은 550만 명, 나에게는 170만 명이었다. 옐친이 최고회의 첫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크라이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카자흐스탄의 건설 노동자와 소련 공병대 복무를 거쳐 이르쿠츠크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법학자로, 1975년부터 옴스크대학에서 환경법과 국가법을 가르쳤다. 1989년 소련 인민대의원으로 당선되었고, 5월 29일 제1차 대회에서 옐친이 최고회의 의원 선출에 실패하자 자신의 당선 자리를 옐친에게 양보해 전국적인 인물이 되었다. 1993년 옐친에 의해 러시아 검찰총장에 임명되었으나, 1994년 2월 국가두마의 사면 결의를 헌법에 따라 집행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측의 압력을 받고 사임하며 원칙을 지켰다. 이후 옴스크주 부지사(1996–2003)를 지내고 모교로 돌아가 후학 양성에 힘쓰다 2019년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959카자흐 SSR 테미르타우에서 목수로 노동
- 1960–63소련군 공병대 복무
- 1963–75이르쿠츠크대학 법학부 졸업, 대학원, 조교, 전임강사
- 1975–91옴스크대학 부교수(환경법·국가법)
- 1989–91소련 인민대의원; 지역간대의원그룹 회원
- 1993–94러시아 검찰총장
- 1996–2003옴스크주 부지사
- 2003–19옴스크대학 교수; 옴스크법학연구소 제1부소장(20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