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압둘라 살레

علي عبد الله صالح
예멘 국가기관 민족주의 예멘 예멘 1942/1947–2017 ✕ 사망, 사망 경위는 이견

북예멘의 마지막 대통령, 통일 예멘의 첫 국가원수

1988년 5월 남북이 긴장 완화와 국경 비무장화, 공동 석유 탐사구역, 신분증 통행에 합의했고, 1989년 11월 아덴에서 1981년 초안 헌법에 합의해 1990년 5월 22일 통일 예멘공화국이 선포됐다.

예멘의 군인 출신 정치가. 1958년 군에 들어가 1963년 장교로 임관했고 북예멘 내전을 겪었다. 1977년 타이즈 군사총독을 지내다 1978년 북예멘 대통령이 되어 1990년 5월 22일 남북 통일까지 재임했고, 통일 뒤에는 예멘공화국 대통령으로 2012년 사임할 때까지 재임했다. 1994년 이래 독자적으로 통치했고 2011년 예멘 혁명 뒤 후티와 손잡았다가 2017년 말 결별했으며 그해 12월 4일 사망했다.

다른 이름: 알리 아브둘라흐 살레흐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후티 동맹과 결별, 2011~2017

2011년 예멘 혁명으로 권좌에서 밀려난 살레는 2013년 사나의 알살레 모스크 한쪽에 자신의 33년 통치를 기록한 박물관을 열어 정치적 존재감을 이어갔다. 유엔 예멘 특사 자말 베노마르는 그해 10월 2011년 이양 합의가 정치적 자격 상실을 다루지 않는다며 그와 그의 아들이 차기 대선에 출마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알자지라는 그가 수년에 걸쳐 군부, 시민, 부족 집단 사이에 복잡한 동맹망을 세워 적대 세력을 서로 맞부딪히게 함으로써 사회적 분열을 부채질했다고 평했다.

2014년 후티가 사나를 장악했고, 살레는 이른바 ‘뒤에서’ 이끈 인물로 지목되며 그의 부족 민병과 정부군 일부가 후티의 권력 행진에 합류했다. 같은 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가 평화를 위협하고 정치 과정을 방해한다며 여행 금지와 자산 동결 제재를 부과했고, 11월에는 살레와 후티 지지자 수천 명이 제재에 항의해 사나 거리를 메웠다. 알자지라는 2015년 1월 후티가 사나를 장악한 다음 달의 통화 녹음이라며 후티 지도자와 군사·정치적 행보를 조율하는 살레의 육성을 보도했고, 이 녹음은 10월에 녹음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후티가 여섯 차례 전쟁을 치렀음에도, 살레는 사우디 주도 연합군이 자신의 자택을 공습한 뒤 후티와의 동맹을 공식 선언했고, 그 전에 걸프 국가들에 안전한 출국을 요청하기도 했다. 2016년 7월 28일 양측은 사우디 주도 연합에 맞서는 공식 동맹을 발표했으며, 살레의 국민전체회의 5명과 후티 5명으로 구성된 10인 최고정치평의회가 그해 8월 14일 선서했다. 2016년 혁명 기념일 연단에서 살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돌아가지 않고 사우디 정권과 직접 대화하자고 제안했고, 같은 해 사나에서 통치할 수 있게 하는 후티 측 정치평의회 문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2016년 8월 후티가 그를 ‘민병’이라 부른 데 반발하는 등 균열이 드러났고, 측근이자 국민전체회의 고위 간부인 칼리드 알라디가 총에 맞아 숨지면서 관계가 급속히 악화했다. 알자지라는 그가 사적 부를 쌓으면서도 이익 분배와 처벌을 동원해 경쟁 세력이 뭉치지 못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2017년 11월 28일부터 사나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 12월 2일 살레는 TV 연설에서 후티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사우디 주도 연합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고 밝혔으며, 후티는 그를 쿠데타로 규정하고 반역죄를 씌웠다. 예멘 관리들은 그의 결별 결정이 그해 초 아부다비에서 계획되었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그는 12월 4일 교전 중이던 사나에서 사망했다. 로켓추진수류탄이 차량을 무력화한 뒤 마리브로 향하던 중 후티 저격수에게 머리를 맞았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당 관계자들은 사나 자택에서, 또는 사난으로 향하던 차량 행렬이 공격받아 숨졌다며 이를 부인했다. 후티는 머리에 총상이 있는 시신 영상이라 주장하는 자료를 공개했고, 후티 지도자 압둘 말리크 알후티는 그의 죽음을 ‘배신 음모가 무너진 날’이라 부르며 국민전체회의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사망은 측근과 조카에 의해 확인되었고,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는 조의를 표하고 후티에 대한 봉기를 촉구했다. 그는 12월 9일 사나에 묻혔으며 후티 사령관은 20명 이하만 참석한 엄격한 조건이었다고 전했다. 유엔 문서에 따르면 예멘 정부는 축출된 대통령직을 사임하기로 한 전직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한 사망 경위에 관한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