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이스 인드라

Alois Indra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체코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1921–1990 ○ 자연사

프라하의 봄을 끝장내기 위해 소련에 개입을 요청한 초청장에 서명한 KSČ 강경파

1968년 8월 21일 아침, 둡체크는 '인드라 동지가 이끄는 노동자·농민 정부의 이름으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인드라의 내각은 단 하루도 현실이 되지 못했고, 그가 서명한 초청장은 1990년대에야 공개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네오스탈린주의 정치인.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보수파 핵심으로, 바르샤바조약군 개입을 요청한 '초청 편지'에 서명한 5인 중 하나였으며 침공 직후 소련의 후원 아래 '노동자·농민 정부' 수반으로 내정되었다. 후사크 체제에서도 정치국원과 연방의회 의장으로서 '정상화' 숙청을 추진했고, 1989년 벨벳 혁명으로 축출되어 이듬해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68년 8월: '노동자·농민 정부' 수립 시도와 '인드라 정부'

1968년 8월 3일 인드라는 드라고미르 콜데르, 올드르지흐 슈베스타, 안토닌 카페크, 바실 비략과 함께 '초청 편지'로 불리게 되는 문서에 서명했다. 러시아어로 작성된 이 편지는 "여러분이 가진 모든 수단"으로 도움을 달라며, 오직 소련의 도움으로만 체코슬로바키아를 '다가오는 반혁명의 위험'에서 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는 모스크바에 개입의 구실을 제공했다. 두 출처는 이 편지가 8월 3일 브라티슬라바에서 브레즈네프에게 전달되었다고 전한다.

바르샤바조약군 진격 직후 인드라는 합법 정부를 대체할 협력자 내각 구성을 시도했다. 소련은 1968년 프라하의 봄 자유화에 반대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내 보수파 인사들을 동원했고, 이 내각은 침공 직후 권력을 장악할 예정이었다. 8월 21일 오후 콜데르·비략·요제프 레나르트와 함께 프라하 성으로 가서 루드비크 스보보다 대통령에게 정부와 당 정치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권력을 넘겨달라고 요구했으나, 대통령은 올드르지흐 체르니크의 합법 정부를 계속 신뢰한다고 답했다.

8월 22일 이들은 호텔 프라하에서 회동한 뒤 소련 대사관에서 체르보넨코 대사와 만났고, 23시에 다시 프라하 성으로 갔다. 스보보다가 '노동자·농민 정부' 구성을 제안받고 이를 거부하자 내각은 끝내 임명되지 못했으며, 이 사건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내 보수적·친소 인사들이 주도한 협력자 내각, 곧 '인드라 정부'로 기록되었다. 회담 내용은 러시아 기록보관소에 잠겨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좌절은 즉각적인 정치적 결과를 낳았다. 8월 22일 프라하 비소차니에서 비밀리에 열린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비상대회는 개입을 규탄하고 개혁파가 주도하는 새 중앙위원회를 선출했으며, 인드라를 비롯한 협력자들을 당 최고 기구에서 배제했다. 인드라는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지 않았고 중앙위원회 서기직에서도 물러났다. 모스크바 의정서가 체결된 뒤 그는 심장 발작을 겪고 몇 주 만에 체코슬로바키아로 돌아왔으며, 비략과 함께 당시 가장 보수적이고 인기 없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다만 이 대회의 결론은 모스크바 의정서에 따라 무효화되었고, 1971년 그는 연방의회 의장이 되어 1989년까지 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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