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프로그램의 민간 얼굴, 24년간 원자력 국가위원회 이끈 창립 세대
1986년 체르노빌 기자회견에서 '과학은 희생을 요구합니다'라고 말했다.
안드라니크 페트로샨츠는 소련 원자력 산업의 창립 세대를 대표하는 과학자·행정가로, 원자폭탄 개발을 관리한 제1총국에서 시작해 1962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원자력이용위원회 의장으로서 소련 핵 프로그램의 민간 얼굴이자 평화적 이용의 국제적 대변인이었다.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직후 기자회견에서 '과학은 희생을 요구합니다'라고 발언한 인물로도 기록된다.
경력 연표
- 1933–1939우랄중공업기계(UZTM)에서 작업반장·기술부장·수석기사 대리 역임
- 1939–1941중공업기계제조 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
- 1941–1943전차공업 인민위원부 부인민위원
- 1943–1945국방위원회(GKO) 전차산업 담당 부위원
- 1947–1953소련 각료회의 제1총국 부국장 — 원자력 프로젝트
- 1955–1962중형기계공업부 차관
- 1962–1986국가원자력이용위원회 의장
관련 역사 사건
아르메니아 원자력 발전과 페트로샨츠
페트로샨츠는 소련 원자력 행정의 최고위직에 오른 아르메니아인으로서, 자신의 고향 공화국에 원자력 발전을 도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60년대 후반 아르메니아 SSR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이 추진될 때, 그는 국가원자력이용위원회 의장으로서 이 사업을 전폭 지지하고 모스크바의 승인을 이끌어내는 데 힘썼다. 메차모르에 건설된 아르메니아 원자력 발전소는 VVER-440형 원자로 2기를 갖추고 1976년과 1980년에 각각 가동을 시작했으며, 남카프카스 지역 유일의 원자력 발전소로서 공화국 전력 생산의 약 3분의 1을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아라라트 평원에 원자력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우려하는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페트로샨츠는 "당신들은 이 원전을 두고 나에게 언젠가 고맙다고 말할 것입니다"라고 장담했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1988년 스피타크 지진 당시 발전소 부지에 가해진 진동은 리히터 규모 6.25에 달했으나, 9.5등급까지 견디도록 설계된 원전은 손상 없이 버텨냈다. 1989년 안전 우려로 가동이 중단되었다가 1995년 2호기가 재가동되었고, 이후 아르메니아가 1990년대 극심한 에너지 위기를 견디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2020년 모스크바 포바르스카야 거리에 설치된 그의 기념 명판은 이러한 공로를 기리는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