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코뮌의 두 공안위원회에 모두 뽑힌 리옹 출신 철도원·언론인
1831년 리옹에서 태어나 철도 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국제노동자협회에 가입했다. 1869년 파리로 와서 앙리 로슈포르의 《라 마르세예즈》 기자가 되었다. 파리 포위 중이던 1871년 1월 7일 국방정부의 항복 정책을 규탄하고 코뮌 수립을 요구한 「붉은 포스터」에 서명했고, 국민방위대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뽑혔다. 3월 26일 3구에서 코뮌 평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내무 대표와 회의 서기를 맡았고, 5월 1일 공안위원회 위원으로 뽑혀 5월 9일 재선되었다. 피의 일주일을 겪고 런던으로 피신해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 위원이 되었으나, 1872년 블랑키주의자 동료들과 함께 인터내셔널을 떠났다. 1880년 사면 뒤 돌아와 가난 속에 죽었다.
다른 이름: 아르망 앙투안 쥘 아르노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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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파리 코뮌(1871)코뮌 의원·공안위원회 위원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
1871–1872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 위원
사회운동·조직
경력 연표
- 1871.03.26–05.28파리 코뮌 평의회 의원 (3구)
- 1871.05.01–28파리 코뮌 공안위원회 위원
- 1871–1872런던에서 국제노동자협회 총평의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