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기의 동원과 개시를 맡은 국내군 지휘관
1944년 7월 말, 그는 지하 병력을 봉기에 맞춰 동원하고 8월 1일 개시 명령을 내렸다.
안토니 흐루시치엘은 폴란드군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바르샤바 지구 국내군을 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1944년 7월 25일 봉기 승인을 받은 뒤 지하 병력의 동원을 준비하고 현지 개시 시기를 판단했으며, 8월 1일 봉기가 시작되자 수도의 무장 부대를 지휘했다. 그러나 외부 지원과 독일군의 붕괴를 낙관한 그의 판단은 봉기의 장기화와 군사적 한계를 함께 드러냈다. 전후에는 포로수용소를 거쳐 서방으로 망명했고, 공산 당국의 시민권 박탈을 겪은 뒤 워싱턴에서 생을 마쳤다.
다른 이름: 몬테르 · 안토니 크루시엘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5–1918오스트리아-헝가리군 제90보병연대 장교
- 1919–1927폴란드군 제14·42보병연대 지휘관
- 1931–1937보병훈련소와 육군대학 전술 강사
- 1938–1939폴란드군 제82 시베리아 소총연대장
- 1940–1941무장투쟁연맹 제3부장, 바르샤바 지구 참모장
- 1941–1944바르샤바 지구 국내군 사령관
- 1944바르샤바 봉기 전군 지휘관, 바르샤바 국내군단 사령관
- 1945–1948서방 폴란드군 참모·재향군인 조직 간부
관련 역사 사건
국내군 입대와 대독 지하전 (1940–1944)
패전 후 독일 포로수용소를 거쳐 바르샤바로 돌아온 흐루시치엘은 1940년 6월 무장투쟁연맹(Związek Walki Zbrojnej)에 입대해 참모 제3부장으로서 훈련과 전술을 담당했고, 그해 10월부터는 바르샤바시 지구 부사령관이 되었다. 1941년 6월부터는 바르샤바 지구 사령관으로서 무장투쟁연맹과 그 후신인 국내군(Armia Krajowa)의 수도 지하 조직을 이끌었다. 그는 '몬테르'(Monter)를 비롯해 '소콜', '코나르', '누르트' 등의 가명을 사용했고, 1942년 8월 10일 대령으로 진급했다. 이 시기 그는 수도에서 전개된 독일 점령군에 대한 지하 저항 전반, 곧 병력 조직과 훈련, 정보 수집과 사보타주 준비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1944년 봉기 직전 그가 동원과 개시를 지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하 조직의 축적된 기반 위에서였다. 다만 이 단계의 활동은 이후 봉기의 평가와 분리해 다룰 필요가 있다. 지하 조직의 확대와 동원 체계의 구축 자체는 독일 점령 아래에서 축적된 성과였으나, 그 군사적 역량이 봉기라는 전면적 무장 행동을 감당할 만한 것이었는지는 개시 결정 국면에서 별도로 검증되어야 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