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에서 점령의 상징을 끌어내린 저항가
1941년 5월 30일 밤, 산타스와 마놀리스 글레조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나치 깃발을 끌어내렸다.
아포스톨로스 산타스는 제2차 세계대전기 그리스의 저항운동가로, 마놀리스 글레조스와 함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나치 깃발을 철거한 일로 기억된다. 두 학생의 행동은 점령에 맞선 초기 공개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독일 당국은 그들에게 궐석 사형을 선고했다. 산타스는 이후 EAM과 ELAS에 참여해 무장투쟁을 벌였지만, 해방 뒤에는 좌파라는 이유로 이카리아와 마크로니소스 등지에 유배되었다. 그는 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가 1962년 그리스로 돌아왔다.
다른 이름: 라키스 산타스 · 락키스 산타스
주요 활동과 소속
- 1942– 사회운동·조직
경력 연표
- 1941마놀리스 글레조스와 함께 아크로폴리스의 나치 깃발을 철거했다.
- 1942민족해방전선(EAM)에 참여했다.
- 1943그리스 인민해방군(ELAS)에 참여해 중부 그리스에서 추축국에 맞서 싸웠다.
- 1944해방 뒤 법학 공부를 마쳤다.
- 1946–1948좌파적 신념 때문에 이카리아, 프시탈레이아, 마크로니소스로 유배되었다.
- 1948–1962이탈리아를 거쳐 캐나다로 탈출해 정치적 망명을 얻었다.
- 1962–2011그리스로 돌아와 아테네에서 살았다.
관련 역사 사건
1942년 체포와 아베로프 감옥, 그리고 사면 석방
1941년 5월의 깃발 철거로 독일 당국은 산타스와 글레조스에게 궐석 사형을 선고했고, 두 사람은 계속 신원을 숨긴 채 지하 활동을 이어갔다. 1942년 두 사람은 독일군에 체포되었다. 그리스 사료들은 두 사람이 중동으로 탈출을 시도하던 중 붙잡혔다고 전하며, 일부 영문 보도는 밀고로 체포되었다고 기록하지만, 모든 사료가 1942년이라는 시기와 아베로프 감옥 수감이라는 사실을 공유한다. 수감 중 두 사람은 고문을 당했고 산타스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점령 당국은 끝내 두 청년의 신원이 1941년의 깃발 철거범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미 자신들에게 내려진 궐석 사형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 1942년의 사면 조치로 석방되었다. 이 사건은 산타스가 아크로폴리스에서 벌인 행동과, 그 행동이 점령 당국에 의해 어떻게 다루어졌는가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독일 측은 상징적 모욕에 대해서는 사형으로 응답했지만, 정작 그 사형 대상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지는 못했다. 석방 이후 두 사람의 길은 갈렸다. 산타스는 산으로 올라가 그리스 인민해방군(ELAS)에 합류했고, 글레조스는 아테네에 남아 학생 조직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