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 총리를 지내고 로카르노 조약과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이끈 외무장관
1862년 낭트의 여관 주인 집안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었고, 노동조합 운동과 사회주의 언론에 뛰어들어 장 조레스와 함께 《뤼마니테》를 창간했다. 1902년 사회주의 하원의원이 되었고 1905년 정교분리법의 보고자로서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1906년 사리앵 내각에 들어간 일로 노동자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에서 쫓겨났다. 1909년 처음 각료회의 의장이 된 뒤 모두 열한 차례 정부를 이끌었다. 1925년부터 죽을 때까지 외무장관으로 독일과의 화해를 추구해 로카르노 조약으로 192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1928년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맺었다. 1931년 대통령 선거에서 지고 이듬해 죽었다.
다른 이름: 아리스티드 피에르 앙리 브리앙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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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904
정치·당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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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932
입법·국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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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06
정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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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932
프랑스 국가기관각료회의 의장·외무장관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902–1932하원의원 (루아르, 1919년부터 루아르앵페리외르)
- 1906.03–1908.01공교육·종교 장관
- 1908.01–1909.07법무장관
- 1909.07.24–1911.02.27각료회의 의장
- 1913.01.21–03.22각료회의 의장
- 1915.10.29–1917.03.17각료회의 의장
- 1921.01.16–1922.01.12각료회의 의장
- 1925.11.28–1926.07.17각료회의 의장
- 1929.07.29–10.22각료회의 의장
- 1925.04–1932.01외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