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세라이에

Auguste Serraillier

총평의회 특사로 파리에 가 코뮌 평의회 위원이 된 제화공

1840년 바르 도의 피가니에르에서 태어난 제화공으로, 아버지와 함께 런던에 자리 잡았다. 1869년 10월 인터내셔널 총평의회에 들어가 벨기에·에스파냐·네덜란드 담당 통신서기가 되었다. 1870년 9월 4일 공화국이 선포되자 엘리자베트 드미트리예프와 함께 파리에 특사로 보내져 제2구 공화주의 위원회를 이끌었다. 런던에 돌아가 보고한 뒤 다시 파리로 가서 1871년 4월 16일 보궐 선거에서 제2구 대표로 코뮌 평의회에 뽑혀 노동·교환 위원회에 들었다. 공안위원회 설치에 반대하고 소수파 선언에 서명했으며, 피의 주간 뒤 런던으로 빠져나가 궐석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72년 헤이그 대회에서 바쿠닌 제명에 찬성했다. 1891년 주앵빌르퐁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