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이그나티예비치 아르바토프

Борис Игнатьевич Арватов
소련 리투아니아 1896–1940 ✕ 자살

아방가르드의 생쥐스트, 생산예술의 이론가

「예술 밖으로 뛰어내려야 비로소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 — 나탄 알트만에 관한 책(1924)의 마지막 주석에서, 아르바토프는 형식 분석에서 사회적 사실로의 자신의 방법론적 도약을 이 한 문장으로 정식화했다.

프롤레트쿨트 이론가이자 ЛЕФ 공동 창립자. 예술을 산업과 융합하는 '생산예술'을 주창하며 구성주의 미학의 기초를 놓았다. 전시 뇌진탕 후유증으로 1920년대 말 창작을 중단했고 1940년 자살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생산예술: 일상의 혁명적 재구성

아르바토프의 가장 독창적인 이론적 기여는 '생산예술(производственное искусство)' 개념이다. 그는 이젤 회화와 조각을 자본주의적 미술 시장의 유물로 간주하고, 혁명 이후 예술의 과제는 '생활 건설(жизнестроение)', 즉 일상적 사물과 사회적 실천을 직접 조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술과 생산』(1926)에서 그는 중세의 장인은 예술가이자 생산자였으나 자본주의가 예술을 공예로부터 분리시켜 '비실용적 대상'의 생산으로 전락시켰다고 분석한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예술과 공학의 융합이었다: "그제야 예술은 과학 및 기술과 손잡고 […] 창조적 능력을 환영의 영역에서 현실적 변화의 영역으로 이전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구성주의와 생산주의 미학의 이론적 토대였으며, 후일 발터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 이념과도 평행선을 그었다. 아르바토프에게 혁명적 예술이란 단순히 혁명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현실 자체를 건설하는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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