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니콜라예비치 체르노우소프

Борис Николаевич Черноус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인 1908–1978 ○ 자연사

레닌그라드 사건 후폭풍 속에 등장했다 사라진 러시아 공화국 수반

1952년 10월, 19차 당대회 직후 체르노우소프는 중앙위 조직국원과 러시아 공화국 총리직에서 동시에 해임되었다. 그의 다음 직장은 모스크바 탐조등 공장이었다.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볼가 강변의 시즈란에서 태어나, 콤소몰 활동가로 출발해 모스크바 동력공학원을 졸업한 기술관료형 당료였다. 1939년부터 1948년까지 모스크바 주당위 제2서기로 알렉산드르 셰르바코프를 보좌했고, 1949년 미하일 로디오노프가 '레닌그라드 사건'으로 숙청된 직후 러시아 공화국 각료회의 의장에 임명되어 스탈린 말년의 러시아 정부를 이끌었다. 1952년 19차 당대회 직후 모든 당직에서 해임되어 모스크바 탐조등 공장장으로 좌천되었고, 스탈린 사후에야 자동차공업부 차관으로 복귀해 고스플란과 코메콘에서 조용히 경력을 마감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당 중앙에서 정부 수반으로, 그리고 강등 이후의 경력

1939년부터 1948년까지 모스크바주당 제2서기로 일한 체르노우소프는 1948~1949년 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서 당·노조·콤소몰 기관 담당 부서를 이끌었다. 1949년 3월 10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의장에 취임했고, 1952년까지 재임했다. 같은 기간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자 중앙위원회 조직국 위원으로 활동했다. 1952년 당과 정부의 직위에서 물러나 모스크바 탐조등 공장장으로 옮겼다. 스탈린 사후 정부로 복귀해 1955~1957년 소련 자동차공업부 차관을 지냈고, 1957년부터 국가계획위원회와 국민경제회의에서 일했다. 1964년부터는 상호경제원조회의 소련 상임대표부 고문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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