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그리고리예비치 두봅스키

Борис Григорьевич Дубовский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19–2008 ○ 자연사

F-1 첫 임계의 방사선 계측을 책임지고 소련 원자로 방사선 안전 체계를 세운 물리학자

1944년, 전선에서 세 번째 중상을 입고 제대한 두봅스키가 목발을 짚고 쿠르차토프를 찾아가자 쿠르차토프는 "그런 몸으로 어떻게 일하겠나?"라고 물었다. 한 달 뒤 그는 목발 없이 지팡이만 짚고 다시 나타나 제2연구소에 채용되었다.

하리코프 대학 출신의 소련 핵물리학자. 1944년 부상 제대 후 쿠르차토프의 제2연구소에 합류해 F-1 원자로 조립 중 방사선량 계측과 감마선 차폐 실험을 수행했으며, 중성자 계수기를 직접 제작하고 플루토늄 축적 계산을 맡았다. 1946년 12월 25일 임계 당시 통제실에 남은 소수 인원 중 하나였고, 이후 소련 원자로 방사선 안전 체계의 기초를 세웠으며 오브닌스크 원자력발전소(1954)와 마야크 플루토늄 생산로들의 물리 기동을 지휘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체르노빌 이후: 설계 책임론과 해고

제2연구소 시절부터 방사선 안전을 맡아 온 두봅스키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우연이 아니라 계속된 설계 결함의 결과로 보았다. 그는 1975년 레닌그라드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1982년 체르노빌 사고를 1986년 사고의 "예행연습"으로 규정했고, RBMK 원자로 설계자 N. A. 돌레잘이 잇따른 사고에도 노심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1989년 오브닌스크에서 낸 저작 《RBMK 원자로를 예로 든 원자로 불안정 요인》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그는 소련 당국의 사고 원인 규정에도, 현장 직원들에 대한 형사 처벌에도 반대했다. 사고 대응에서 해고된 운영 인력의 처벌이 "불법이고 근거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으며, 5명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직원에 대한 유죄 판결을 부당하다고 보았다. 그는 직원들의 위반이 사소한 규정 위반에 그쳤을 것이라며, 사고의 진짜 원인은 원자로의 안전 계통 결함과 부실한 문서, 비전문가의 운영에 있다고 보았다. 자신이 미니중기계제조부 체제의 핵안전 연구실을 이끌었던 경험을 근거로,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M. S. 고르바초프에게 편지를 보내, 체르노빌 운영 인력에게 책임을 계속 전가하는 것은 에너지 산업의 발전 자체를 막는다고 주장하고, 최고회의 생태위원회에서 사고의 진짜 원인과 안전 대책을 설명할 기회를 요청했다. 이 비판은 오브닌스크 과학계 일각의 책임까지 거론했고, 그는 이를 반발한 압력 끝에 1986년 이후 퇴직하게 되었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