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프세볼로도비치 그로모프

Борис Всеволодович Гром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 러시아 러시아인 1943–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마지막 소련 군인, 소련군 철수의 얼굴

1989년 2월 15일, 우정의 다리 위에서 소련 TV 기자에게 말했다. "내 뒤에는 단 한 명의 소련 군인도 남아 있지 않다."

소련군 장성으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세 차례 복무하며 마지막 제40군 사령관(1987–1989)으로 소련군 철수를 지휘했다. 1988년 포위된 호스트를 구출한 '마기스트랄 작전'의 성공으로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았다. 1989년 2월 15일 우정의 다리를 걸어 소련 영토로 들어온 마지막 소련 군인이 되어, 9년간 지속된 전쟁의 공식적 종결을 상징했다. 이후 키예프 군관구 사령관, 소련 내무부 제1차관, 러시아 국방차관을 거쳐 1991년 니콜라이 리시코프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탈냉전기에는 모스크바주 지사로 12년간 재임하며 러시아 권력구조 안에서 군 엘리트의 정치적 전환을 보여주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마기스트랄 작전과 호스트 구출 (1988)

1988년 그로모프가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받은 근거는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호스트를 구출한 '마기스트랄 작전'이었다. 1987년 말 제40군 사령관으로서 그는 동맥처럼 끊긴 가르데즈-호스트 도로를 다시 열고 반군이 조여 온 봉쇄를 풀어야 했다.

작전은 속임수로 시작됐다. 그는 살랑 고개 부근에 허수아비 낙하산 부대를 투하하도록 명령했고, 반군이 사격을 가해 위치를 드러내자 정찰기와 항공 타격으로 그 지점들을 두들겼다. 이어진 4시간 포격 뒤 11월 29일 차량화소총연대가 첫 지상 공격에 나섰으나 격렬한 사격과 반격에 막혀 큰 손실을 내고 물러났다. 12월 1일 공수대대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코만도 대대를 투입한 재공격이 성공해 고지대를 장악했고, 포위를 우려한 반군은 중화기를 버리고 퇴각했다.

소련군은 이어 야간에 헬리콥터로 병력을 실어 미루잔을 장악하고 호스트에도 부대를 투입해 포위를 풀었다. 반군은 도로에 지뢰를 심고 장거리 로켓 사격과 매복으로 저항했으며, 한 매복에서 낙하산병 24명이 전사했다. 그럼에도 기갑 종대는 12월 30일 호스트에 들어갔고, 가르데즈-호스트 도로를 지키던 초소들은 이듬해 1월 말 철수했다.

군사적으로는 성공이었으나 전쟁이 끝나기에 너무 늦은 시점의 승리였다. 소련군 주력이 빠져나간 뒤 반군은 1981년 이래 그랬듯 호스트를 다시 고립시켰다. 그로모프는 이 작전의 계획과 수행의 공로로 1988년 3월 3일 최고 군사 훈장을 받았지만, 그가 벌인 가장 큰 작전의 결과가 오래가지 않았다는 점은 이 전쟁의 조건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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