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민사회당 출신으로 INRA를 이끌며 소련식 경제 계산제를 옹호한 쿠바 공산주의 경제학자
시엔푸에고스에서 태어나 1933년 스무 살에 시장이 되었고, 1936년 쿠바 공산당에 들어가 당 기관지 『오이』를 편집했다. 1944년 바티스타 정부의 무임소 장관을 지냈다. 1958년 7월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7월 26일 운동에 합류해 공산당의 첫 반군 지지 표시가 되었다. 혁명 뒤 1962~1965년 국가농업개혁청(INRA) 청장으로서 소련식 경제 계산제를 옹호해 게바라의 예산 재정 체계와 맞섰다. 1965년부터 쿠바 공산당 정치국원, 1976년부터 국가평의회·각료회의 부의장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1962~1965년, INRA와 경제 계산제
1962년 로드리게스는 국가농업개혁청(INRA) 청장이 되어 1965년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INRA는 1959년 5월 17일 농지개혁을 집행하려고 세운 기관으로, 농촌의 국영 농장과 협동조합을 거느렸다. 외국 언론은 그를 쿠바의 「경제 차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공업부를 이끈 게바라가 공업 전체를 예산으로 운영하는 예산 재정 체계를 밀고 나간 데 비해, 로드리게스는 INRA를 통해 소련과 동구 나라들이 쓰던 경제 계산제를 옹호했다. 기업 단위의 독립 채산과 물질적 자극을 앞세운 이 방식은 대외무역부 장관 알베르토 모라와 프랑스 경제학자 샤를 베텔하임의 이론적 입장과도 맞닿았다.
1987년 그는 체의 체계가 더 진보적이고 평등주의적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경제 계산제가 쿠바의 조건에 더 잘 맞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