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공산당
Communist Party of Cuba
1965년 10월 3일 결성된 쿠바의 유일 집권 정당. 1959년 혁명 뒤 7월 26일 운동과 인민사회당 등이 합쳐 만든 통합혁명조직(ORI, 1961)과 쿠바 사회주의혁명 통일당(PURSC, 1962)을 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도 이념으로 삼으며, 피델 카스트로가 창당 때부터 제1서기를 지냈고 2021년부터 미겔 디아스카넬이 제1서기를 맡고 있다.
상세
쿠바에는 공화국 초기부터 공산주의·사회주의 조직이 있었다. 스페인어 출처에 따르면 첫 쿠바 공산당은 1925년 훌리오 안토니오 메야, 카를로스 발리뇨 등이 세웠고 초대 사무총장은 호세 미겔 페레스였다. 이 당은 1938년까지 비합법 상태였고, 1939년 공산주의혁명연합, 1944년 인민사회당(PSP)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PSP는 1940~1944년 임기의 풀헨시오 바티스타 대통령 후보를 지지해 후안 마리넬로와 카를로스 라파엘 로드리게스가 각료가 되었으나, 1953년 바티스타 독재에서 불법화되었다. PSP는 같은 해 피델 카스트로 등의 몬카다 병영 공격을 비난했고, 1958년 12월까지 7월 26일 운동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1961년 7월 카스트로의 7월 26일 운동, 블라스 로카가 이끈 PSP, 파우레 초몬이 이끈 학생 중심의 혁명지도자단 일부가 합쳐 통합혁명조직(ORI)을 만들었다. ORI는 일부 지도자의 「종파주의 오류」를 숙청한 뒤 1962년 3월 26일 쿠바 사회주의혁명 통일당(PURSC)이 되었고, 1965년 10월 3일 쿠바 공산당이 되었다. 이튿날 중앙위원회 기관지 「그란마」가 창간되었다. 스페인어 출처에 따르면 1966~1968년 아니발 에스칼란테 등 40여 명이 「미시분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당은 창당 뒤 15년 가까이 정치국 밖에서는 거의 활동하지 않았다. 100명 규모의 중앙위원회는 드물게 모였고, 1969년 당원은 인구의 0.7%인 5만 5천 명으로 집권 공산당 가운데 가장 작았다. 1975년 첫 당대회 무렵 당원은 20만 명을 조금 넘었고, 1980년 43만 명, 1985년 52만 명으로 늘었다. 1976년 헌법 제5조는 당을 「사회와 국가의 최고 지도 세력」으로 규정했다. 서기국은 1991년 확대된 정치국에 흡수되었다가 다시 설치되었는데, 그 시기를 영어 출처는 2002년, 스페인어 출처는 2006년으로 적는다.
피델 카스트로는 창당 때부터 제1서기를, 라울 카스트로는 제2서기를 맡았다. 라울이 제1서기가 된 시점에 대해 영어 출처는 피델이 물러난 2008년으로, 스페인어 출처는 2011년 4월 제6차 대회에서 피델의 제1서기직이 끝났다고 적는다. 제6차 대회는 경제·사회 정책 지침을 채택했고, 라울 정부는 노동자 협동조합과 소규모 민간 기업을 늘리는 개혁을 추진했다. 2019년 국민투표로 승인된 새 헌법은 사유재산과 외국인 직접투자를 인정했다. 2021년 4월 16~19일 제8차 대회에서 미겔 디아스카넬이 제1서기로 선출되었다. 영어 출처는 당이 반대파와 정치적 반대를 금지·탄압하는 권위주의 일당 국가로 쿠바를 통치한다고 적는다. 대외적으로 당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그레나다의 뉴주얼 운동 등 좌파 혁명운동을 지원했고, 앙골라 내전에 개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