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들레스트랭

Charles Delestraint
프랑스 국가기관 프랑스 프랑스 1879–1945 ✕ 처형

기갑전과 지하군을 잇고 사라진 장군

1943년 6월 9일, 지하군 지휘관 비달은 파리 라뮈에트역에서 체포되었다.

샤를 들레스트랭은 제1차 세계대전의 포로 경험과 기갑부대 지휘를 거친 프랑스 장군으로, 현대전에서 전차의 역할을 중시했다. 패전과 휴전 뒤에도 저항을 선택한 그는 샤를 드골의 지명으로 비밀군의 초대 지휘관이 되어 여러 저항운동의 군사 조직을 묶었다. 그는 장 물랭과 협력해 점령지 전역으로 조직을 넓혔지만 1943년 6월 9일 체포되었고, 후임을 정해야 하는 상황은 칼뤼르 회의의 배경이 되었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해된 그는 사후 해방훈장을 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비밀군 창설과 '비달' 시기, 1942~1943

1942년 여름, 앙리 프르네의 의견과 장 물랭의 제안에 따라 샤를 드골은 남부 지역 저항운동들의 군사 조직을 맡을 인물로 들레스트랭을 택했다. 그해 8월 4일 런던에서 물랭에게 도착한 확인 전문은 "샤를이 샤를에게, 동의한다"라는 문구였다. 같은 해 11월 11일 물랭을 만난 뒤 드골의 친필 서한으로 임무를 재확인받은 그는 '비달'이라는 이름으로 비밀군(AS)의 지휘관이 되었다.

비밀군은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라 콩바, 리베라시옹, 프랑티뢰 등 남부 지역 저항운동의 무장 조직을 통합한 것이었다. 목표는 연합군 상륙 시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군사 조직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리옹에 들어가 참모부를 구성하고 각 운동의 군사 책임자들과 접촉하며 통합 작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작업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지휘관들 사이의 갈등에서 드러난다. 기갑부대 시절 자신의 부하였던 앙리 프르네는 이 시기 그를 공격하는 발언을 쏟아냈고, 훗날 저서에서 그를 페탱 추종자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하기도 했다. 들레스트랭의 비서였던 프랑수아이브 기앵은 이런 서술이 사실과 다르며 자신이 1940년부터 그에게서 본 것은 프랑스 자유군 지도자의 선전가의 모습이었다고 반박한다.

1943년 2월 런던에서 물랭과 함께 연합군 사령부와 협의한 뒤 그의 관할은 프랑스 전역으로 넓어졌지만, 상륙이 1944년 봄 이전에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게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병력을 조직하고 훈련시키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귀국 후 그는 베르코르를 비롯한 마키를 키우고 식량과 무기 공급을 챙겼으며, 성급한 행동을 피하고 충분히 준비된 작전만을 고집했다. 같은 해 3월 15일 그의 참모진 일부가 체포되면서 독일군의 감시가 강화되었고, 그는 시간이 얼마 없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6월 9일 파리 라뮈에트 지하철역에서 체포될 때 그는 북부 지역 저항운동의 군사 책임자들과 참모장 조제프 가스탈도를 만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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