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기 망명왕당파를 이끈 아르투아 백작
1825년 랭스 대관식에서 성왕(聖王) 치유 의식까지 되살리며 왕권의 신성을 내세웠지만, 1830년 7월 칙령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검열하자 파리 시민이 봉기해 8월 2일 퇴위했다.
루이 16세의 동생 아르투아 백작으로 1789년 바스티유 함락 직후 망명했다. 국외에서 왕정복고를 추진하고 망명귀족 세력의 정치적 구심이 됐다. 부르봉 왕정복고 뒤 1824년 샤를 10세로 즉위했으나 1830년 7월혁명으로 퇴위했다.
다른 이름: 아르투아 백작 · 샤를 필리프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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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1830
프랑스 왕정 국가기관국왕프랑스 국가원수 · 정부 수반대표
군주·왕실
경력 연표
- 1765아버지 도팽 루이 사망
- 1773사부아의 마리 테레즈와 결혼
- 17897월 17일, 바스티유 함락 사흘 뒤 출국
- 1791–1792트리어 선제후국에 망명 궁정을 두고 반혁명 침공을 준비
- 1814왕국 총독 대리로서 왕정복고를 주도
- 1824.09.16–1830.08.02프랑스 국왕. 1825년 랭스에서 대관식
- 18307월 칙령 발표, 8월 2일 퇴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