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의 자유주의 언론인, 「당천하」 발언으로 우파가 된 《광명일보》 총편집
장쑤 이싱 출신으로 영국에서 공부하고 푸단대학 교수를 지냈다. 1946년 자유주의 주간지 《관찰》을 창간해 국민정부를 비판하다 1948년 폐간당했다. 건국 뒤 신화서점 책임자를 거쳐 1957년 4월 《광명일보》 총편집이 되었고, 민주동맹과 구삼학사에 속했다. 6월 1일 통전부 좌담회에서 「마오 주석과 저우 총리께 드리는 몇 가지 의견」으로 「당천하」의 사고방식을 비판했다가, 반우파 투쟁이 시작되자 집중 공격을 받아 11월 해임되고 1958년 1월 「자산계급 우파」로 규정되었다. 1966년 8월 홍위병의 투쟁대회 끝에 자살을 기도했고 9월 행방불명되었다. 끝내 개정되지 않은 중앙급 우파 다섯 명 가운데 하나다.
다른 이름: 저안평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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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957
독립 활동대표
이념·선전 -
1949–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신화서점 책임자
이념·선전
경력 연표
- 1946주간지 《관찰》 창간, 사장·주필
- 1949신화서점 책임자
- 19574월 《광명일보》 총편집, 6월 「당천하」 발언
- 1958「자산계급 우파」로 규정, 인대 대표 자격 박탈
- 1966홍위병 투쟁대회 뒤 자살 기도, 9월 행방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