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세헤르스 코르도베스

Diego Zegers Cordovez
유엔 에콰도르 칠레계 1935–2014 ○ 급사

6년의 제네바 왕복으로 소련군 철수를 틀 지운 에콰도르 출신 유엔 외교관

고르바초프가 철수 의사를 굳힌 것은 스팅어 미사일이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와 외교 덕분'이라고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단언했다.

코르도베스는 에콰도르의 외교관이자 유엔 사무차장으로, 1982년부터 6년간 데 쿠엘랴르 사무총장의 개인대표로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간 제네바 협상을 중재했다. 라울 프레비시와 함께 UNCTAD 창설에 참여했고, 유엔 내에서 특별정무담당 사무차장까지 오르며 이란 인질 위기, 이란-이라크 전쟁, 키프로스 분쟁 등 굵직한 현안을 두루 다뤘다. 1988년 4월 제네바 합의 서명을 이끌어내 소련군 철수의 외교적 틀을 완성했으며, 이후 에콰도르 외무장관과 유엔 대사를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제2의 유엔 시절: 회고와 키프로스 중재

코르도베스가 에콰도르 외무장관직을 마친 뒤 그의 활동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협상의 당사자로서 그 경험을 정리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유엔의 중재자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1992년 그는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레지던시 외교관으로 임명되었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국제분쟁·협력 연구소 이사와 에콰도르 세계무역센터 회장, 뉴욕 소재 국제법률사무소 르뵈프 램 그린 앤 매크레이의 특별고문을 겸했다. 이 시기 그는 언론인 셀리그 S. 해리슨과 함께 1995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오다: 소련 철수의 내막》을 옥스퍼드 대학출판부에서 펴냈다. 이 책은 미국 언론이 굳혀 놓은 통설, 곧 소련군이 미국이 지원한 게릴라에게 쫓겨났다는 설명에 정면으로 맞섰다. 저자들에 따르면 소련이 철수에 합의했을 당시 붉은 군대는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에 견고하게 주둔하고 있었다. 협상 당사자였던 그가 직접 쓴 이 기록은 제네바 합의를 둘러싼 국제정치 해석에서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1997년 4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코르도베스를 사무총장 특별고문으로 임명했다. 이는 한국의 한승주가 키프로스 담당 사무총장 특별대표직을 1997년 4월 30일자로 그만두기로 한 데 따른 것이었다. 아난은 키프로스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한 강화된 노력을 밀어붙일 뜻을 밝혔고, 코르도베스의 일차적 임무는 다음 회차의 양 공동체 간 회담을 준비하고 사무총장의 회담 주재를 돕는 것이었다. 1998년 3월 12일 코르도베스와 함께 사무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과 만났고, 이사회는 섬의 높은 긴장 수준에 우려를 표하며 양측에 협상 과정을 효과적으로 전진시킬 것을 촉구했다. 같은 달 18일부터 22일까지 섬을 찾은 코르도베스는 글라프코스 클레리데스를 두 차례, 라우프 덴크타시를 세 차례 만났다. 클레리데스는 관련 안보리 결의에 기초해 사무총장 주재의 직접 회담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재확인했고, 덴크타시는 '섬에 완전히 기능하는 두 민주주의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기초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코르도베스는 사무총장의 서한을 전달했고 앙카라와 아테네에서도 각각 면담했다. 그러나 합의는 이어지지 않았고, 사무총장은 이 모든 노력이 협상 재개로 이어지기에 충분하지 못했음을 유감으로 기록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성공했던 중재자는 키프로스에서는 결실을 보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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