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포르의 해독을 니미츠의 작전 판단으로 옮긴 태평양 함대 정보참모
1924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부터 도쿄에서 일본어를 익히며 대사관 무관으로 일했고, 이때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여러 번 만났다. 함께 일본어를 배운 조지프 로슈포르와 평생 동료가 되어, 로슈포르가 해독을, 그는 정보의 작전 활용을 맡았다. 진주만 공격 1년 전부터 태평양 함대 사령관 키멀의 정보참모였고 니미츠 아래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1942년 5월 워싱턴이 포트모르즈비나 알류샨을 다음 목표로 볼 때 로슈포르와 함께 6월 첫 주 미드웨이를 내다봐 니미츠를 설득했다. 1945년 도쿄만 항복 조인식에 초대되었고, 전후 해군 정보학교장을 지냈다. 사후 출간된 회고록 『그리고 나는 거기 있었다』에서 진주만의 책임이 워싱턴에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름: 에드윈 토머스 레이턴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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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1959
미국 국가기관대표
보안·정보·치안
경력 연표
- 1924해군사관학교 졸업
- 1929–1932도쿄에서 일본어 연수·대사관 무관
- 1940–1945태평양 함대 정보참모(키멀·니미츠)
- 1959해군 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