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리히의 후임으로 1943~1945년 게슈타포를 거느린 국가보안본부를 이끈 오스트리아 출신 친위대 간부
오스트리아 리트임인크라이스에서 태어나 1926년 그라츠 대학에서 법학 박사가 되었다. 1930년 나치당, 1931년 친위대에 들어갔고, 1934년 7월 폭동 실패 뒤 구금되었다가 대역죄로 처벌받았다. 1935년 무렵 오스트리아 친위대의 지도자가 되었다. 1938년 합병을 도와 자이스잉크바르트 내각의 공안 담당 차관을 지냈고, 이어 오스트리아의 친위대·경찰을 지휘했다. 1943년 1월 암살된 하이드리히의 뒤를 이어 게슈타포·형사경찰·보안국을 거느린 국가보안본부장이 되어 종전까지 홀로코스트의 학살과 점령지 탄압을 조율했고, 인터폴 총재도 겸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 선 친위대 최고위 인물로 1946년 10월 16일 교수형을 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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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45
보안·정보·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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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오스트리아 국가기관공안 담당 차관
보안·정보·치안 -
1943–1945
친위대 (SS)국가보안본부장대표
보안·정보·치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