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바르 살리다르 오글루 마메도프

Etibar Səlidar oğlu Məmmədov

프리마코프에게 저항을 예고한 인민전선 부의장

폴랴니치코는 그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정에 군대가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메도프는 "저항할 것"이라고 답했다.

아제르바이잔 인민전선의 부의장으로서 민족독립운동의 선봉에 섰고, 1990년 1월 19일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와 빅토르 폴랴니치코를 만나 바쿠 진입을 경고받았다. 그날 밤 폴랴니치코로부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군대가 들어갈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저항을 예고했으며, 이후 크렘린의 바쿠 유혈 진압에 대한 핵심 증언자가 되었다. 이후 아제르바이잔 민족독립당을 창당해 1998년 대선에서 2위를 차지했고, 독립 아제르바이잔에서 장기간 야당 지도자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90년 1월: 프리마코프 경고, 레포르토보 구금, 석방 투쟁

1988년부터 아제르바이잔 민족민주 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활동한 마메도프는 인민전선 창립 회의에서 첫 자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89년에는 대규모 파업 운동을 이끌었고, 1990년 1월 14일에는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이끄는 정치국 대표단이 바쿠에 도착해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마메도프는 프리마코프가 아제르바이잔이 소련에서 분리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군대를 투입하겠다는 뜻을 비쳤다고 증언했다. 1월 19~20일 밤 소련군이 바쿠에 진입했고, 인민전선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마메도프는 바쿠 학살에 대한 보도와 해외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모스크바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열던 중 국가보안위원회(KGB)에 체포되어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구금되었다. 아제르바이잔 측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곳에서 9개월을 보냈으며, 그동안 석방을 요구하는 150만 명분의 서명이 모아졌다. 1990년 11월 구치소에서 석방되었고, 같은 해 12월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독립 전야의 정치 무대로 복귀했다. 이 구금과 석방 경험은 그가 이후 민족독립당을 창당하고 야당 지도자로 장기 활동하는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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