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엔 카베

Étienne Cabet
초기 사회주의 프랑스 프랑스 1788–1856 ○ 뇌졸중

'공산주의'라는 말을 만든 이카리아 운동의 창시자

1848년 2월 3일, 카베의 추종자 69명이 르아브르 항구에서 배에 올랐다. '이카리아로 가자!' 그들은 신대륙에 지상의 공산낙원을 세우러 떠났다.

프랑스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이자 이카리아 운동의 창시자. 1840년 『이카리아 여행』을 출판하여 노동자 협동조합에 기반한 공산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했고, '공산주의(communisme)'라는 말을 처음 정치적 용어로 정립했다. 약 40만 추종자를 거느린 당대 가장 대중적인 사회주의 옹호자로, 『진정한 기독교』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사회 평등의 복음으로 재해석했다. 1848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와 일리노이에 이카리아 공동체를 세웠고, 1898년까지 이어진 미국 최장수 비종교 공동체 실험이 되었다. 계몽주의 유토피아 사상과 노동자 운동을 잇는 교량이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노동자 공동체의 건설과 갈등

카베는 1847년 프랑스의 경제난 속에서 프랑스 사회를 개혁하려던 구상을 접고, 추종자들과 미국에 공동체를 세우기로 했다. 1848년 텍사스 정착 시도는 약속받은 토지보다 훨씬 적은 땅을 받으며 좌절됐고, 질병으로 이주민의 약 3분의 1이 프랑스로 돌아갔다. 남은 이주민들은 1849년 일리노이주 나부로 옮겼다. 카베는 첫해 지도자로 선출됐고, 농업에 기반한 공동체는 학교와 작업장, 신문, 극장과 도서관을 갖추며 성장해 1855년에는 약 500명 규모가 되었다.

그는 1851년 이전 추종자들의 사기 혐의에 대응하려 프랑스로 돌아갔다가 무죄 판결을 받고 1852년 나부로 복귀했다. 복귀 후 공동체의 생활 규칙을 강화하면서 내부 갈등이 격화됐다. 1855년 카베는 종신 대통령직을 두는 헌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공동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지도자직에서 물러났다. 노동 분담과 식량 배분을 둘러싼 갈등도 이어졌고, 1856년 10월 지지자 약 180명과 함께 미주리주로 떠났다. 카베는 그해 11월 미주리에서 뇌졸중을 앓고 사망했다. 나부 공동체의 경험은 공동 생산과 생활을 조직하는 실험이 성장했지만, 지도권과 공동체 구성원의 의사결정 사이의 충돌을 해결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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