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피아

Félix Pyat

1848년 산악파 의원에서 코뮌 첫 공안위원회 위원이 된 극작가·언론인

1810년 비에르종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었지만 언론과 연극에 몰두했고, 1847년 희곡 『파리의 넝마주이』로 성공을 거두었다. 1848년 제헌의회 의원으로 뽑혀 산악파와 함께 투표하며 대통령직 폐지를 제안했다. 1849년 6월 13일 봉기에 가담했다가 스위스·벨기에·영국으로 망명했고,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에 가입했다. 1870년 9월 귀국해 신문 《르 콩바》를 냈고, 1871년 3월 코뮌 의원으로 당선되어 집행위원회와 첫 공안위원회에 들어갔으나 5월 5일 물러났다. 피의 일주일 전에 런던으로 빠져나갔고 궐석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880년 사면으로 돌아와 1888년 부슈뒤론 선출 하원의원이 되었고, 1889년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