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 봉기를 진압한 베이양군 장군으로 직계를 세우고 대총통을 대리한 군벌
즈리 허젠의 농가에서 태어나 톈진 무비학당을 졸업했고, 청일전쟁 뒤 일본 주재 무관으로 쓴 일본군 개혁 보고가 위안스카이의 눈에 들어 신건육군의 훈련을 맡았다. 청 말 베이양군 사단장과 군자부 총판을 지냈고, 1911년 우창 봉기 때 제1군을 이끌고 한커우와 한양을 되찾았는데 포격으로 한커우 시가지가 크게 불탔다. 중화민국에서 즈리·장쑤 도독을 지냈고, 위안이 황제가 되려 하자 그와 갈라서 호국전쟁에 가담했다. 1916년 부총통으로 뽑혔고, 1917년 장쉰의 복벽 뒤 대총통을 대리했다. 남방과의 평화 통일을 바랐으나 돤치루이의 안후이파에 밀렸고, 1918년 10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 이듬해 베이징에서 병으로 죽었다.
다른 이름: 풍국장
주요 활동과 소속
-
1911
청 왕조 국가기관베이양군 제1군 사령
군사·지휘 -
1912–1919
북양정부·군벌직계 수령
군사·지휘 -
1916–1917
북양정부·군벌부총통
정부·행정 -
1917–1918
북양정부·군벌대총통 대리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대표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890톈진 무비학당 졸업
- 1895일본 주재 무관
- 1905베이양군 제3진 통제
- 1907.07군자부 총판
- 1911.10.27베이양군 제1군 사령
- 1912–1913즈리 도독
- 1913–1917장쑤 도독
- 1916.10.30–1917부총통
- 1917.07.17–1918.10.10대총통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