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
1912년 중화민국 수립부터 오늘까지 중국의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끈 중국공산당의 최고 지도자를 정권별로 모았다. 베이양 정부와 광저우 정부, 국민정부와 소비에트 정부, 충칭과 난징 협력 정권처럼 둘 이상의 정부가 맞선 시기에는 각 정부를 따로 싣는다.
난징 임시정부 (1912)
신해혁명 뒤 혁명파 각 성 대표가 1911년 12월 쑨원을 임시대총통으로 뽑았고, 1912년 1월 1일 난징에서 중화민국이 선포되었다. 쑨원은 청 황제의 퇴위를 조건으로 위안스카이에게 자리를 넘기기로 하여, 선통제 퇴위 다음 날 사임서를 냈다. 이 시기에는 국무총리 직책이 없었다.
베이양 정부 (1912–1928)
위안스카이와 그 뒤를 이은 베이양 군벌이 베이징에서 이끈 정부로,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정부로 인정받았다. 1914–1916년에는 국무총리 대신 정사당 국무경을 두었다. 총통이 쫓겨나거나 공석일 때 국무총리가 내각을 이끌며 총통 직무를 대신한 섭정 내각(1922, 1923, 1924, 1926–1927)은 국가원수 칸에 따로 싣지 않고 정부 수반 칸에만 둔다. 국무총리 대리는 실제로 내각을 이끈 경우를 포함해 영어 위키백과 목록에 오른 대로 모두 싣는다.
광저우 정부 (1917–1925)
쑨원은 1917년 위안스카이 사후 폐기된 임시약법을 지킨다며 광저우에서 호법군정부를 세우고 대원수가 되었다. 1918년 서남 군벌이 군정부를 쑨원·천춘쉬안·탕사오이·우팅팡·탕지야오·루룽팅·린바오이의 총재 7인 집단 지도로 바꾸자 쑨원은 물러났다. 쑨원은 1921년 비상대총통, 1923년 다시 대원수가 되어 국민당 개조와 제1차 국공합작을 이끌었다.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자 (1921–)
당의 최고 직위는 중앙국 서기,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총서기, 중앙정치국 주석, 중앙위원회 주석을 거쳐 1982년부터 다시 총서기가 되었다. 1930년에는 리리싼, 1931년에는 왕밍이 직함과 관계없이 실권을 쥐었고, 1978년 이후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은 당 수장이 아니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 지도했다. 이 칸은 당의 최고 직위에 오른 사람을 싣는다.
- 1921.07.23–1927.08.07 천두슈 중앙국 서기 →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 총서기 1927년 7월 사임, 8·7 회의에서 해임
- 1927.08.07–1928.07.19 취추바이 임시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사실상 지도자)
- 1928.07.01–1931.06.24 샹중파 중앙정치국 주석 체포되어 처형
- 1931.09–1935.01.17 보구 임시중앙 총책임 → 총서기 1934년 1월까지 대리
- 1935.01.17–1943.03.20 장원톈 총책임 (총서기)
- 1943.03.20–1976.09.09 마오쩌둥 중앙정치국 주석 → 중앙위원회 주석 1945년 6월부터 중앙위원회 주석, 재임 중 사망
- 1976.10.07–1981.06.28 화궈펑 중앙위원회 주석
- 1981.06.29–1987.01.15 후야오방 중앙위원회 주석 → 총서기 1982년 주석직 폐지로 총서기
- 1987.01.15–1989.06.24 자오쯔양 총서기 1987년 11월까지 대리
- 1989.06.24–2002.11.15 장쩌민 총서기
- 2002.11.15–2012.11.15 후진타오 총서기
- 2012.11.15–현재 시진핑 총서기
국민정부 (1925–1948)
국민당이 1925년 광저우에서 세운 국민정부는 북벌 뒤 1928년 난징으로 옮겨 전국 정부가 되었다. 1928년 10월부터 오원제 아래 행정원장이 정부를 이끌었다. 1931년 장제스가 물러난 뒤 주석은 린썬의 명목상 직위가 되었고, 실권은 군사위원회 위원장 장제스에게 있었다. 1927년 국민정부가 우한과 난징으로 갈라진 시기와 주석을 두지 않은 상무위원제 시기의 위원은 싣지 않는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 (1931–1937)
중국공산당이 1931년 11월 장시성 루이진에서 세운 소비에트 국가다. 마오쩌둥이 중앙집행위원회 주석과 인민위원회 주석을 겸했으나 당 중앙이 소비에트 지구로 옮겨 온 뒤 실권을 잃었고, 1934년 2월 인민위원회 주석은 장원톈에게 넘어갔다. 장정 뒤 산베이로 옮겨 갔고, 제2차 국공합작에 따라 1937년 9월 산간닝 변구 정부로 바뀌었다.
왕징웨이 정권 (1940–1945)
국민당 부총재였던 왕징웨이가 일본과 화평을 내세우며 충칭을 떠나 1940년 3월 일본 점령하의 난징에 세운 협력 정권이다. 충칭 국민정부와 같은 이름과 기구를 내걸었지만 일본과 그 동맹국에게만 승인받았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해체되었고, 천궁보는 한간으로 처형되었다.
중화민국 헌정 정부 (1948–, 1949년부터 타이완)
1947년 헌법에 따라 1948년 총통제가 시작되었다. 국공내전에서 진 국민당 정부는 1949년 말 타이베이로 옮겼고, 이후 이 정부는 타이완과 부속 섬만을 다스린다. 계엄은 1987년에 풀렸고 1996년부터 총통은 직선으로 뽑힌다.
중화인민공화국 (1949–)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중앙인민정부 주석으로 건국을 선포했고, 1954년 헌법으로 국가주석과 국무원 총리를 두었다. 국가주석은 류사오치 실각 뒤 대행 체제를 거쳐 1975년 헌법으로 폐지되었고, 그동안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주더·예젠잉이 국가원수 역할을 했다. 1982년 헌법으로 국가주석이 부활했고 1993년부터 당 총서기가 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