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화학당을 세우고 위안스카이의 제제를 지지한 교통계 관료, 1922년 국무총리 대리
1869년 광둥에서 태어났고 집안의 본적은 산둥이다. 광저우와 베이징의 동문관을 거쳐 주미 공사관에서 일하며 미국에서 공부했고, 귀국 뒤 미국 유학생 파견을 맡아 칭화학당을 세우고 1911–1912년 그 교장을 지냈다. 중화민국에서는 산둥 도독을 거쳐 교통·육군·재정·농상 총장을 두루 맡았고, 위안스카이의 제제를 지지해 1915년 특사로 일본에 갔다. 제제가 무너진 뒤 제제파 여덟 명의 하나로 수배되어 일본으로 피했다가 1918년 사면되었다. 1920년 재정총장이 되었고, 1922년 국무총리 대리로서 쉬스창이 물러난 뒤 국무원이 대총통 직무를 잠시 대행할 때 이를 이끌었다. 그 뒤 정계를 떠나 미국에서 영화 제작을 배우고 영화사를 세웠으며 1923년 베이징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7.04주미 공사관 수행원
- 1909–1912.04유미학무처 총판, 칭화학당 창설
- 1911.04–1912.04칭화학당 감독
- 1912.03–1913.08산둥 도독
- 1913.09–1914.05교통총장, 육군총장 겸임
- 1914.05–1915.04재정총장
- 1915.04–1916농상총장
- 1915제제 특사로 일본 파견
- 1916.07–1918.02제제파로 수배, 일본 망명
- 1920.08–1921재정총장
- 1922.04.08–06.11국무총리 대리
- 1922.06.02–11국무원 섭정으로 대총통 직무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