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의 의형제로 베이징 정변 뒤 섭정 내각을 이끌고 탕구 정전협정에 서명한 정치가
1880년 저장 상위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했고, 1905년 도쿄에서 중국동맹회에 들어가 장제스·장췬과 사귀었다. 신해혁명 때 천치메이와 상하이의 독립을 선언하고 장제스와 의형제를 맺었다. 1913년 제2혁명에 실패해 망명했고, 돌아온 뒤 쑨원에게 개인 충성을 맹세하라는 요구에 반대해 정계를 떠났다가 1921년 워싱턴 회의 대표단에 참여했다. 1924년 펑위샹의 베이징 정변을 도와 국무총리 대리로 섭정 내각을 이끌며 차오쿤의 임기가 불법이라고 선언하고 푸이를 자금성에서 내보냈다. 국민정부에서 상하이 특별시장과 외교부장을 지냈고, 1933년 화베이 정무정리위원회 위원장으로 탕구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1936년 상하이에서 암으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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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12
정부·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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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북양정부·군벌국무총리 대리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
정치·당 지도 -
1927–1928
중화민국 국가기관상하이 특별시장, 외교부장
정부·행정 -
1933–1935
중화민국 국가기관화베이 정무정리위원회 위원장대표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904저장 무비학당 입학
- 1905도쿄 진무학교 유학, 중국동맹회 가입
- 1911.11상하이 군정부 참모장
- 1913–1916제2혁명 실패 뒤 해외 망명
- 1921워싱턴 회의 대표단 고문
- 1924.10.31–11.24국무총리 대리, 섭정 내각으로 대총통 직무 대행
- 1927.07상하이 특별시장
- 1928.02–05국민정부 외교부장
- 1933.05–1935행정원 주베이핑 정무정리위원회 위원장
- 1933.05.31탕구 정전협정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