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맹회
Tongmenghui
1905년 8월 20일 도쿄에서 쑨원·황싱·쑹자오런 등이 흥중회·광복회 같은 여러 반청 혁명 단체를 합쳐 만든 비밀 혁명 조직. 「만주족을 몰아내고 중화를 회복하며 민국을 세우고 지권을 고르게 한다」를 강령으로 삼아 남방에서 여러 차례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신해혁명 뒤 1912년 3월 공개 정당이 되었다가 8월 다른 정파와 합쳐 국민당이 되었다.
상세
결성과 조직: 동맹회는 일본에 와 있던 중국 유학생 사회를 바탕으로 생겼다. 쑨원이 총리, 황싱이 서무를 맡아 그다음 지도자가 되었고, 결성 당시 회원의 90% 이상이 17~26세였다. 왕징웨이·후한민·랴오중카이·장빙린·추진 등이 회원이었으며, 1906년 싱가포르에, 1909년 페낭에 남양 지부가 생겨 동남아시아 화교의 자금을 모았다. 일본의 아시아주의자들도 이 조직을 도왔다.
봉기와 노선: 1906년 12월부터 1908년 4월까지 동맹회가 이끈 일곱 차례의 봉기가 모두 실패했고, 1911년 4월 27일 광저우 황화강 봉기에서도 수많은 청년 회원이 죽었다. 지도부 안에서는 쑨원의 남방 국경 봉기 노선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장강 유역에서 봉기를 준비한 공진회 같은 분파가 생겨 1911년 우창 봉기의 조직이 되었다. 회원 가운데에는 암살을 옹호한 무정부주의자도 있었다.
정당으로: 신해혁명 뒤 동맹회 본부는 상하이와 난징을 거쳐 1912년 5월 베이징으로 옮겼고, 3월 3일 공개 정당으로 바뀔 때 쑨원이 총리, 황싱·리위안훙이 협리가 되었다. 회원은 약 55만 명으로 당시 중국 최대의 정당이었으며, 8월 쑹자오런의 주도로 다른 정파와 합쳐 국민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