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싱

黃興
중국동맹회 민족주의 중국 중국 1874–1916 ○ 병사

쑨원 다음가는 동맹회 지도자, 양샤 전투와 제2혁명의 혁명군 총지휘

후난 창사 출신으로 일본 유학 중 혁명에 뛰어들어 1903년 화흥회를 세웠고, 1905년 쑨원과 함께 도쿄에서 중국동맹회를 결성해 그다음 지도자가 되었다. 1907~1911년 남방의 봉기를 여러 차례 이끌었고 1911년 4월 황화강 봉기에서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우창 봉기 뒤 양샤 전투에서 혁명군을 지휘했고, 난징 임시정부의 육군총장 겸 참모총장, 1912년 국민당의 이사가 되었다. 1913년 제2혁명 때 난징에서 장쑤의 독립을 이끌었다가 실패해 일본과 미국으로 망명했고, 위안스카이가 죽은 뒤 귀국했으나 그해 10월 상하이에서 병사했다.

다른 이름: 황흥 · 황커창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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