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원 다음가는 동맹회 지도자, 양샤 전투와 제2혁명의 혁명군 총지휘
후난 창사 출신으로 일본 유학 중 혁명에 뛰어들어 1903년 화흥회를 세웠고, 1905년 쑨원과 함께 도쿄에서 중국동맹회를 결성해 그다음 지도자가 되었다. 1907~1911년 남방의 봉기를 여러 차례 이끌었고 1911년 4월 황화강 봉기에서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우창 봉기 뒤 양샤 전투에서 혁명군을 지휘했고, 난징 임시정부의 육군총장 겸 참모총장, 1912년 국민당의 이사가 되었다. 1913년 제2혁명 때 난징에서 장쑤의 독립을 이끌었다가 실패해 일본과 미국으로 망명했고, 위안스카이가 죽은 뒤 귀국했으나 그해 10월 상하이에서 병사했다.
다른 이름: 황흥 · 황커창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3화흥회 결성, 회장
- 1905도쿄에서 중국동맹회 창립에 참여, 서무 담당
- 1907–1908친저우·전난관 등 남방 봉기 지휘
- 1911황화강 봉기 지휘, 양샤 전투 혁명군 총지휘
- 1912난징 임시정부 육군총장 겸 참모총장
- 1912국민당 이사
- 1913제2혁명 장쑤 독립 주도, 일본 망명
- 1914–1916미국 망명, 호국군 자금 모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