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변법을 이끈 개혁 사상가, 공화국 수립 뒤에도 입헌군주제를 고집한 보황파
광둥 난하이의 학자 집안 출신으로, 공자를 제도 개혁가로 해석한 『공자개제고』 등으로 변법론을 펼쳤다. 1898년 젊은 광서제의 신임을 얻어 무술변법을 이끌었으나 서태후의 정변으로 개혁이 뒤집히자 해외로 망명했다. 망명 중 량치차오와 보황회를 세워 광서제의 복위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며 쑨원의 혁명파와 화교 사회에서 맞섰다. 신해혁명 뒤에도 공화제에 반대했고, 1917년 7월 장쉰의 복벽에 가담했다가 실패하자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사유재산과 가족이 사라진 이상 사회를 그린 『대동서』는 마오쩌둥 등 뒤 세대에게도 읽혔다. 1927년 칭다오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강유위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88광서제에게 첫 상서
- 1895베이징 회시 응시생들의 공거상서 주도
- 1898무술변법 주도, 정변 뒤 망명
- 1917장쉰의 복벽 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