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치차오

梁啓超
독립 활동 자유주의·공화주의 중국 중국 1873–1929 ○ 병사

무술변법과 《신민총보》의 계몽가, 위안스카이의 제정에 맞선 진보당 지도자

광둥 신후이 출신으로 스승 캉유웨이와 함께 1898년 무술변법에 참여했고, 정변 뒤 일본으로 망명해 14년을 지냈다. 요코하마에서 《신민총보》 등을 내며 서양과 일본의 사상을 번역·소개해 한 세대의 청년에게 영향을 주었고,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며 혁명파와 논쟁했다. 신해혁명 뒤 귀국해 진보당을 만들고 베이징 정부의 사법총장과 폐제국 총재를 지냈다. 1915년 위안스카이의 제정에 반대하는 글을 쓰고 제자 차이어를 설득해 윈난에서 봉기하게 했으며, 위안이 죽은 뒤 돤치루이 내각의 재정총장을 맡았다. 1919년 민간 대표단을 이끌고 파리 강화회의에 가 중국의 이익을 호소했고, 뒤에는 정계를 떠났다.

다른 이름: 양계초 · 량런궁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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