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옥 제도를 근대화한 법률 관료, 1925–1926년 돤치루이 정부의 국무총리
1872년 안후이 젠더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청 형부에서 관직을 시작했고, 1910년 구미의 사법·감옥 제도를 시찰하고 워싱턴 국제감옥회의에 나갔다. 1912년 대리원장, 이어 사법총장이 되어 변호사 제도를 세웠고, 국민당 창당에 참여했다. 위안스카이가 죽은 뒤 돤치루이의 안후이파에 들어가 1916년 내무·교통 총장을 지냈다. 1925년 12월 국무총리가 다시 생기자 그 자리에 올랐으나 두 달 만에 물러났다. 국민정부에서 진무위원회 위원장으로 구휼 사업을 이끌었고, 1936–1938년 주일 대사로 중일전쟁 초기 교섭을 맡았으며 1947년 몽장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50년 타이완으로 건너가 1964년 타이베이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7발공으로 형부 관직 진출
- 1908펑톈 고등심판청 청승
- 1910구미 사법·감옥 시찰, 워싱턴 국제감옥회의 참석
- 1912.05대리원장
- 1912–1913사법총장
- 1914.05–1916.04푸젠 민정장
- 1916.06–1917.05내무총장, 교통총장
- 1921.09–1923안후이 성장
- 1925.12.26–1926.03.04국무총리
- 1928.10국민정부 진무위원회 위원장
- 1936.02–1938.01주일 대사
- 1947.04–1948.12몽장위원회 위원장
- 1950타이완 이주, 총통부 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