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쿤의 매수 선거를 뒷받침한 즈리파 관료, 1923년 섭정 내각의 국무총리 대리
1870년 톈진에서 태어나 1894년 거인이 되었고, 후베이에서 장즈둥 아래 무비학당 감독과 조폐창 총판을 거쳐 제학사와 포정사를 지냈다. 신해혁명 뒤 차오쿤과 가까워졌고 1921년부터 재정·내무·교통 총장을 두루 맡았다. 1923년 6월 리위안훙이 쫓겨난 뒤 섭정 내각의 국무총리 대리로 대총통 직무를 대행하며 의원 매수로 차오쿤을 대총통에 앉히는 데 힘을 보탰다. 1924년 10월 베이징 정변으로 차오쿤이 갇히자 톈진과 상하이로 달아났다. 1926년부터 톈진 일본 조계에 살며 일본 첩보 기관과 협력했고, 1937년 왕커민의 친일 임시정부에서 톈진 시장과 허베이성장을 지냈다. 1940년 베이징에서 심장병으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06–1911
청 왕조 국가기관후베이 제학사
교육 -
1921–1923
북양정부·군벌재정·내무총장
정부·행정 -
1923–1924
북양정부·군벌국무총리 대리중국 국가원수 · 정부 수반 · 당 지도자대표
정치·당 지도 -
1937–1938
중화민국 국가기관임시정부 톈진 시장·허베이성장
정부·행정
경력 연표
- 1894거인 급제
- 1906후베이 제학사
- 1909후베이 포정사
- 1917.08즈리 선출 참의원 의원
- 1921.10–12재정총장
- 1921.12–1922.06내무총장
- 1923.01–06내무총장
- 1923.06.14–1924.01.12국무총리 대리, 섭정 내각으로 대총통 직무 대행
- 1924.01–10세무 독판
- 1935지차 정무위원회 위원
- 1937.12.17–1938.05친일 임시정부 허베이성장, 톈진 시장